"냉정한 평가로 사회발전 계기 삼아야"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시작으로 무려 100여일간 타올랐던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가 이뤄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겼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진영 간 갈등이 여전하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소통을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일단 집회를 주도했던 시민단체의 역할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시대에 맞는 운동방향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촛불의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는 데에는 진보나 보수쪽 할 것 없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갈등 진행형…소통문화 절실 = 2년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촛불집회는 이념적 대립 및 소통 부재의 해소·해결이라는 숙제를 남기고 사그라들었지만 촛불이 잉태한 사회적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소통'이라는 화두가 전면에 떠오르자 당시 정부는 국민과 소통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해 집회에 불을 댕겼던 MBC PD수첩을 검찰이 조사하면서 진보와 보수진영 간 공방이 이어졌다.

법원이 올해 초 1심 판결에서 PD수첩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을 계기로 `당연한 결과'라는 진보 측과 `공정치 못한 판결'이라는 보수 세력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이 판결 이후 검찰은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고, 항소심 결과에 따라 검찰이나 PD수첩 측에서 상고 할 가능성이 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양 진영 간 갈등은 물밑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치 확립'을 모토로 세운 정부에 대해 진보 진영의 반발과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법과 원칙을 우선하는 것은 없다며 불법에는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이에 대해 진보 진영은 소통에 노력을 보이던 정부가 촛불집회에 참여한 단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공안탄압' 의 권위주의적 행태로 되돌아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불법 집회나 시위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경찰의 방침에 진보단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소규모 집회를 곳곳에서 열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대립과 갈등은 촛불집회 이후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소통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12일 "국정을 맡은 세력과 권력을 빼앗긴 세력 간의 갈등 양상이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뒤 좌우 갈등, 보혁 갈등이 거의 절정에 이르렀다"며 "이후에도 소통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새롭게 통합이나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광우병 이야기나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을 두고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등 대형 사건이 터질때마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괴담도 소통문화의 부재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민단체 새 역할 모색해야 = 자발적 참여 열기 속에 불이 붙은 촛불집회는 평화 기조가 한동안 유지되면서 단순한 행사나 시위의 차원을 넘어 `촛불축제'로 정착되는 듯했다.

그러나 `6.10 100만 촛불대행진'을 기점으로 일반인의 참여가 줄어들면서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폭력시위 양상으로 변했다.

촛불집회 열기가 식어 가던 8월에는 일부 시위자가 염산을 넣은 드링크제 병을 경찰에 투척하기도 했다.

밤마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도로점거 시위와 경찰의 시위대 원천봉쇄 작전으로 교통이 마비되자 촛불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길은 싸늘해졌다.

참여 열기가 식고 폭력과 혼란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정서가 퍼지자 집회를 주도했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100일간 이어진 촛불집회의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보수 성향 인사들은 일부 시민단체가 주도한 촛불 집회를 법치주의 질서를 어지럽힌 `폭동'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발현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

라이트코리아의 봉태홍 대표는 "촛불집회로 경찰 등 공권력이 가장 무력화됐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으로 봐서는 안된다.

법치를 파괴하는 잘못된 시위였다"고 주장했다.

국민 열기를 끝까지 하나의 힘으로 응집하지 못한 채 결국 폭력으로 얼룩진 집회로 마무리된 것을 두고 집회의 구심점인 시민단체의 역할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운동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우리 사회는 촛불집회와 비슷한 쟁점을 계속 마주하게 될 텐데 문제를 이성적이고 품위있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정권 찬반 여부나 상대방의 파멸만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촛불에 대한 냉정한 평가 있어야" = 전문가들은 촛불 집회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엇갈린 평가를 내리면서도 "촛불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통해 사회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고생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자발적으로 모여 미래지향적 사회운동의 전형을 보여줬다.

촛불만큼 자신의 의견을 평화적 방식으로 표현한 사회운동은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용산참사같은 이후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중은 침묵했다.

정치적 주체로 자리잡아 정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지 못하고 1회성으로 끝난 것은 촛불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당시 정부와 촛불 시민들 사이에 소통이 부족해 문제가 확대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특정 정책을 추진하면서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려는 자세가 부족했다"며 "천안함 사건과 4대강 사업 등에 있어서 촛불집회를 거울로 삼아 정부가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효종 교수는 촛불집회를 우리 시위문화의 현주소를 짚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교수는 "촛불집회가 광장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였다는 주장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시위문화가 가진 폭력적인 성격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렇게 평가하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도 4대강 사업이나 행정도시 건설 등 논란이 되는 여러 쟁점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품위있고 절제된 형태로 제기될 수 있도록 모두가 고민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안홍석 기자 kong79@yna.co.kra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