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1700선 아래로 주저앉자 개인투자자들이 대대적인 '주식 쇼핑'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이 처분하는 대형 우량주를 대거 사들이며 지수 반등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최근 조정장에서 개인이 공격적으로 매수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2008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주가가 급락한 뒤 지난해 빠르게 회복한 과정을 지켜본 '학습효과' 때문으로 분석한다. 최근 급락장이 국내 기업의 양호한 실적과 무관한 외부 충격 탓이어서 저가 매수 기회로 인식한 것이다. 게다가 국내 연기금 등 장기 투자 자금까지 주식을 사들이고 있어 지수는 추가 반등을 시도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증시 분석가들은 시장이 단기간에 그리스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힘은 부족할 것으로 보여 성급하게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개인의 힘으로 닷새 만에 반등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은 4039억원을 순매수했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최대 7500억유로(약 1120조원) 규모의 구제금융기금 설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호재로 작용했다. 코스피지수는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 공세에도 30.13포인트(1.83%) 오른 1677.63에 마감하며 5일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주 장중 1630선 밑으로 밀렸던 지수가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개인의 적극적인 '사자' 덕분이다. 이달 들어 개인은 1조8200억원가량 순매수 중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포스코 KB금융 LG전자 등 업종 대표주들을 고루 쓸어담았다. 유동성 루머로 주가가 출렁였던 두산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두산그룹주도 대거 사들이는 등 조정장을 매수 호기로 삼아 5일 연속 보유 지분을 줄인 외국인과 상반된 모습이다.

증시 주변의 개인자금도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삼성생명 청약금 환불일인 지난 7일 고객예탁금은 전날보다 1조6926억원 급증한 16조6033억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고객예탁금이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긴 돈이나 주식을 판 뒤 찾아가지 않은 돈을 말한다. 삼성생명 청약자 중 일부가 돈을 빼가지 않고 증시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국내 주식형펀드로 이날 3660억원이 순유입돼 2007년 11월21일(3793억원) 이후 약 2년6개월 만의 최대를 기록했다.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융자 잔액도 188억원 늘어 4조9146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리먼 사태 이후 위기에 대응하는 투자자들의 반응 속도와 주기가 대단히 빨라졌다"며 "기업 실적과 같은 펀더멘털은 변함이 없는데 공포심으로 급락한 시장은 머지않아 반등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반기 대비 저가 매수 기회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부담이긴 하지만 개인 연기금 등의 가세로 지수 하단은 다진 것으로 진단했다. 이날 아시아 증시가 마감한 뒤 열린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급반등해 코스피지수가 지난 주말처럼 다시 급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리스 사태 이후 사정이 다급해진 유럽계 투자자가 일부 이탈했지만 국내 외국인 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며 "1650선 이하는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바겐세일' 구간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실물지표가 견고하다는 점도 지수 반등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서대일 대우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4월 신규 고용이 29만명 증가해 4개월 연속 오름세"라며 "고용 증가는 2분기 미국의 수요 회복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팀장은 "유럽 사태로 미국이 당분간 금리 인상과 같은 출구전략을 쓰기 어려워졌다는 점은 오히려 증시에 호재"라며 "하반기 반등장에 대비하려면 지금이 연간으로 주식 비중을 늘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말까지 기대수익률을 15% 정도로 잡고 5월 기간조정 장세에서 우량주를 매수하는 전략을 추천했다.

그러나 유럽의 구제기금 설립 세부 방안을 놓고 EU 회원 · 비회원국,IMF 간에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섣불리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신중론도 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