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들이 모인 과천 정부청사 공무원들은 요즘처럼 한가한 적이 없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정책들이 죄다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4월 임시국회 동안 중요 정책현안을 놓고 수시로 당 · 정협의가 벌어졌지만 이번에는 한 차례도 없었다.

부처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장 · 차관을 국회로 불러 현안을 설명하라는 요구가 많았지만 이런 자리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장기간 추진해야 하는 과제들의 경우 후속조치를 취하려 해도 선거를 앞두고 말조차 꺼낼 분위기가 안 된다"며 "정책 보고서를 올려도 반응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기획재정부 등 일부 부처의 경우 잇단 고위급 인사에 따른 업무 공백도 일부 요인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정치적 악재가 될 소지가 있는 정책들을 죄다 선거 이후로 미루고 있는 탓이 크다.

◆민감한 경제현안 지방선거 이후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이나 전문 자격사 진입규제 완화 등 해당 업계나 이익단체 반발에 부딪친 서비스산업 개혁 과제가 올해 들어 논의가 중단됐다.

연초 발표될 예정이었던 공기업 연봉제 및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은 발표 시점이 점점 미뤄지더니 지금은 얘기조차 사라졌다. 일각에선 "공기업이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가 공기업에 딸린 수많은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수 확대를 위한 각종 법 개정안들도 표류 상태다. 해외금융계좌신고제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 재정건전성에 무게를 더 두고 재정계획을 짜야 하는 만큼 올해 하반기 세제개편안에서는 과도한 세(稅)감면 등을 없애는 내용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며 "그러러면 지금부터라도 여론을 떠보는 절차가 시작돼야 하는데 표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한 국회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경제법안 줄줄이 연기

4월 국회에서 처리 예정이던 각종 경제 관련 법안도 무더기로 연기됐다.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정부안 제출 뒤 2년 가까이 표류해오던 이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마무리지을 예정이었으나 물건너갔다. 유권자들의 '반(反) 대기업 정서'를 의식한 탓이 크다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국내 기업 및 금융권의 '오일머니' 유치를 돕기 위해 추진했던 이슬람채권(스쿠크)발행 관련 법(조세특례제한법)개정안은 논의조차 안 된 채 다음 회기로 넘어갔다. 선거를 앞두고 특정 종교에 특혜를 준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부담을 고려한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 밖에도 신용과 경제사업 부문 분리를 내용으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보험사의 지급결제 허용 등 보험업법 개정안,한국은행에 제한적 조사권을 부여한 한은법 개정안,퇴직연금법 개정안 등 이해 당사자들끼리 갈등을 빚는 법안들도 모두 처리가 연기됐다.

선심성 정책들도 쏟아지고 있다. 여당은 최근 각종 세 감면책을 내놓고 있다. 국회의원 발의로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세 감면 법안은 모두 64개에 달한다. 4월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들도 지방 미분양주택 양도세 감면,택시용 연료 개별소비세 · 교육세 면제 일몰 연장,기업도시 입주기업에 대한 세제지원 등 선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여당이 지방선거 핵심 공약으로 발표한 '고향세'(향토발전세) 도입이 대표적인 선심성 정책으로 지적된다. 소득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납부하는 '균등할 주민세' 중 일부를 떼내 지방재정이 취약한 곳으로 지원하자는 게 취지다. 하지만 세수 규모가 적어 재정 확충에 도움이 안 되는 데다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만 일으킬 소지가 크다. 뿐만 아니라 거주지에 세금을 내는 지방세 입법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종태/이준혁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