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하렘엔 수백명의 여인…그러나 술탄은 방탕하지 않았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에 두 발을 걸치고 있는 터키 이스탄불.'도시를 향하여'라는 뜻의 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고대 세계는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그 결과 청동기 시대에 이미 세계 최초로 제철 기술을 가졌던 히타이트 문명을 비롯해 그리스,페르시아,로마,우라르투,아르메니아,초기 그리스도교,비잔틴 제국,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투르크 등 숱한 제국이 터키 땅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들이 남겨놓은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와 문명은 유럽과 중동에 낀 터키의 최대 유산이며 관광 자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터키를 모른다. 몇 해 전부터 터키여행 붐이 일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터키를 다녀왔지만 10일 안팎의 짧은 여행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여행사 가이드의 설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책마을] 하렘엔 수백명의 여인…그러나 술탄은 방탕하지 않았다
《터키,1만 년의 시간여행》은 이런 지적 갈증을 넉넉히 해소하고도 남는 책이다. 한국외국어대 그리스발칸어학과 교수인 저자는 동서문명의 교차로인 이 지역을 30년 이상 누빈 경험을 토대로 터키 당의 신화와 역사,문명을 퍼즐 맞추듯 흥미롭게 자세하게 엮어낸다. 술탄이 살았던 톱카프 궁전과 성소피아 대성당,블루모스크 등 봐도봐도 끝이 없는 이스탄불의 유적과 문화를 바닥에 깔린 돌 하나부터 모자이크 하나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살폈다. 저자를 따라 톱카프 궁전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보자.

"궁전의 가장 은밀한 곳은 술탄의 여자들이 살던 하렘이다. 하렘은 방이 250개 또는 300개라고 하니 미로가 아닐 수 없다. 그 공간에서 400명에서 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데,그 가운데는 하렘의 감시와 관리를 맡은 200명 내외의 흑인 내시도 있었다. "

저자는 술탄이 방탕하게 살았을 것이라 상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하렘에서는 전통과 지켜야 할 의무규정,정해진 격식이 엄격했으며 술탄은 어떤 여인들이 하렘에 있는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는 것.술탄에게 적당한 여자를 골라 수청을 주선하는 사람은 술탄의 어머니였다고 한다.

"슐리만은 위의 성벽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보물을 파냈다. 그리고 소피아가 걸치고 있는 빨간 숄에 그 보물을 숨겨 자신들의 숙소로 옮겼다. …그의 고고학적 성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884년부터 그는 미케나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티린스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 발굴을 통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묘사된 도시들이 전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도시들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

저자는 19세기 트로이아 발굴의 감동적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또한 수도 앙카라와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 하투샤,셀주크 투르크 제국의 수도 콘야,성 니콜라오스의 도시 미라와 헤로도토스의 고향 보드룸,신들의 도시 밀레토스,사도 요한의 교회가 있는 에페소스 등을 두루 순례하며 고대 이후의 신화와 역사,종교의 세계를 섭렵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