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작가가 일본에서 전시회를 갖는 일은 흔하지만 현지 팬클럽 결성은 처음 있는 일이다.
서씨의 일본 팬클럽 멤버는 500여명.대중문화 스타에 비하면 미미한 것 같지만 웬만한 일본 작가보다 탄탄하다. 야마구치 사이토 도쿄 청주학원 부총장을 비롯해 다카오 하라 신일본전자 회장,인기 가수 미코 마요미,하야코 히로시마 현의원,센지 겐지오 후쿠오카 현의원 등 쟁쟁한 정 · 재계 인사들이 대거 끼어있다.
이처럼 인기를 끄는 것은 서씨 작품의 톡특한 미학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물질적인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서구 문화와 달리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의 미학이 배어 있다.
야마구치 사이토 도쿄 청주학원 부총장은 "서구 문화가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통 문화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서씨의 산수화에는 전통 회화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수직과 수평의 선으로 자연을 묘사하는 직필준,일렬로 움직이는 형상을 잡아낸 우점준 등의 화법도 일본인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로 꼽힌다.
하라 겐네이 일본 스모후원회 부회장은 "육각형 기둥 형태의 천연수정처럼 수직과 수평의 선으로 묘사되는 직필준은 급박하고 날카로우며 힘차다"고 설명했다.
1986년 독일로 건너간 서씨는 91년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뮌헨,함부르크 등에서 통독 기념 순회전을 열며 주목받았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고 김수환 추기경이 그의 후원자를 자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신장암과 투병 중인 그는 7~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한국현대미술제'에 신작 30여점을 전시한다. 130×116㎝ 크기의 대작을 비롯해 '관포세심''추강홍류''춘곡'등 한국과 일본의 산수를 강한 필선으로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다. 일본 팬클럽 회원들은 7일 행사 개막에 맞춰 서씨의 전시회를 찾을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류석우씨는 "조선시대 회화나 도자기 같은 고미술품을 좋아하는 일본 기성 세대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전통 한국화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국력이 그만큼 신장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현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