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한은을 변화시킬 것을 주문했다. 첫번째는 한은이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보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두번째는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중앙은행에 걸맞은 역할을 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김 총재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모델을 한은에 접목하고 국제사회에 G20 의장국으로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1일 밝혔다.


◆한은,FRB 모델로 간다

FRB는 역할이나 위상이 한은과 천양지차다. 한국은행은 법(한은법 1조)에 의해 '물가 안정'으로만 역할이 국한돼 있지만 FRB는 '물가 안정'에 '고용 · 성장률 제고를 통한 국민경제 발전'까지 도모하도록 돼 있다.

김 총재는 취임사에서 '물가 안정'과 더불어 '고용' 및 '금융 안정'도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경제정책의 두 축으로 '고용'과 '물가'를 제시했고,여기에다 '금융 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한은의 경쟁자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영국 등의 중앙은행"이라고 말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한은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총재의 발언은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좁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법이 개정된 1997년 이전에는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에 '물가 안정'뿐 아니라 '은행신용제도 건전화'가 들어 있었다.

◆한은법 개정 어떻게 될까

김 총재가 '고용'을 중시하겠다고 한 만큼 한은의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관심이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은이 자금을 공급할 때 고용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염두에 둘 것"으로 내다봤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리겠지만 고용이 계속 부진할 경우 총액한도대출 등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분야에 자금을 지원하는 식의 정책조합(policy mix)이 이뤄질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한은법 개정이다. 이 대통령의 주문과 김 총재의 뜻대로 한국은행이 환골탈태하려면 한은법이 바뀌어야 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지난해 말 마련한 한은법 개정안엔 '금융 안정'만 들어가 있고 '고용'은 언급이 없다. '금융 안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한은에 금융회사 조사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한은의 변화를 강조한 만큼 한국은행법 개정에 청와대가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은의 독립성을 적극 지원할 생각을 갖고 있다"며 "한은의 독립성도 중요하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보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은이 금융 안정과 더불어 고용까지 함께 고려하는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다면 중앙은행의 위상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대수술 필요

김 총재는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논의하는 데 있어 한은이 G20 의장국 중앙은행으로서 입장을 적극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이를 추진하기 위해 한은의 대대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우리는 위기 이전에 비해 사고와 관행,조직 운영에서 무엇이 달라졌나"라고 한은 직원들을 질타했다.

한은 내부에선 김 총재가 G20과 글로벌 마인드,조사 역량 강화를 언급한 만큼 관련 부서 확대 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총재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금융연구원,민간경제연구소의 전문 인력을 수혈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