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열두 살 된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의 야망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공신들을 제거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그는 왕위를 탐하는 서른일곱 살의 야심가에 지나지 않았다. 계유정난을 선포했을 때 몇몇 부하들은 그의 곁에서 달아났다.

단종을 보좌하는 일흔 살의 김종서에게 수양은 명분에서 밀리고 있었다. 김종서는 세종 시절,조선의 북방 경계선을 넓힌 무인이자 젊은 선비들에게 태산북두로 추앙받은 문신이었다. 쿠데타의 길은 그를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마침내 수양은 가노를 보내 철퇴로 내려쳤다. 그리고 수양이 세운 나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몰아내려했던 공신들의 나라였다. 수양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공신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은 이후 당쟁의 불씨가 됐다. 반면 김종서는 시대의 금기가 됐다. 사망 293년 후 영조 때 공식 신원될 때까지.

역사학자 이덕일의 소설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은 김종서의 일생을 통해 태종에서 단종에 이르는 조선 전기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역사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편찬자도 실은 김종서였다. 수양이 왕위를 찬탈한 뒤 그의 이름을 두 역사서에서 삭제했을 뿐이었다. 패기만만한 수양이 김종서를 두려워한 정황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