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7일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노(老) 경제학자의 칼럼 한 편이 실렸다. 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가 쓴 '우리는 불황으로 가지 않는다'는 제목의 이 칼럼은 불안에 떨고 있는 미국민들을 안심시켰다. 1930년대 대공황기와 비교해 경제의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린 것.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보인 이 칼럼은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칼럼이 이미 몇 주 전에 '베커-포스너 블로그'(uchicagolaw.typepad.com/beckerposner)에 먼저 올라왔던 것이라는 점이다. 이 블로그는 베커 교수와 법경제학자 리처드 포스너 미국 연방법원 판사가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전 세계 중요 이슈들을 대화 형식으로 토론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경제학자들의 블로그 이용은 무척 활발하다. 2008년 말 미국에서 경제위기 해법을 놓고 논쟁을 벌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krugman.blogs.nytimes.com)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gregmankiw.blogspot.com)는 대표적인 블로그 경제학자로 꼽힌다. 뉴욕 타임스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는 크루그먼 교수는 아예 공식 블로그를 이 신문사 홈페이지 속에 만들었다. 칼럼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적어 많은 고정 방문객을 확보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블로그도 유명하다. 그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뒤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pages.stern.nyu.edu/~NROUBINI)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최근엔 글로벌 통화와 환율 등을 다루는 별도의 홈페이지(roubini.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괴짜경제학'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freakonomics.blogs.nytimes.com),'경제학 콘서트' 저자인 팀 하퍼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논설위원(timharford.com),윌리엄 이스털리 뉴욕대 경제학 교수(aidwatchers.com) 등의 블로그가 잘 알려져 있다. 크루그먼 등 유명 경제학자들이 블로그에 게재한 글들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정부 관계자들도 많이 보고 있어 정책 결정에 직 ·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로그에 비하면 경제학자들의 트위터 소통은 아직까지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다. 한 번에 140자밖에 쓰지 못하도록 하는 트위터는 주장 · 근거 · 논리를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팔로어'들의 코멘트에 일일이 답하는 것도 바쁜 경제학자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이런 '링크'를 이용해 트위터를 잘 활용하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다. 자신의 주장이나 칼럼을 짧은 링크로 줄여 140자로 한정된 공간에 링크하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칼럼을 꼬박꼬박 트위터에 링크해둔다. 또 코멘트에 대해서도 다시 글을 올려 자연스러운 토론의 장을 만든다. 맨큐 교수나 이스털리 교수 등도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해외 경제학자들과 비교하면 한국 경제학자들의 블로그나 트위터 이용은 이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수들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시카고대 등과 대비된다. 통찰력이나 식견을 가진 유명 경제학자들도 블로그 운영을 망설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롭게 개진한 주장을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학자들이 현실 경제에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정보방송학)는 "블로그는 권위 있는 전문가가 시간이나 지면 제약 없이 의견을 밝히고 토론한다는 데 큰 매력이 있다"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한국에서도 블로그를 이용하는 경제학자들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