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화폐개혁의 후유증으로 인해 극심한 혼란에 빠지면서 연내 최악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남북이 각각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나왔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19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강원 대명리조트 솔비치에서 개최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 대토론회'에서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변화를 원하는 저항의 싹을 잘라내고 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모든 책임을 내각에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 지원이 여의치 않고 남측으로부터의 지원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무력도발 가능성과 관련,1996년 당시 한 · 미연합사의 국제관계 담당관이었던 로버트 콜린스가 작성한 '북한 붕괴 7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시나리오는 '1단계 자원고갈,2단계 자원투입의 우선순위화,3단계 국지적 독자노선,4단계 탄압,5단계 저항,6단계 분열,7단계 정권교체'를 담고 있다.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이후 물가 폭등과 식량 부족 등 주민 생활이 극심한 후유증을 겪자 최근 당과 군부 주요 인물에 대한 대규모 숙청인사를 단행,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상에 대해 북한이 현재 붕괴 시나리오 4단계에 접어든 상태이며,갑작스러운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통일전략포럼에서 "지금은 6자회담 개최보다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 주시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만약의 급변사태에 대비,미국 중국 등과 공동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최근 대북 접근정책의 무게추를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개최와 함께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도 일정부분 옮겨놓는 모습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한 · 미 · 중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 공동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며 "내달 베이징과 6월 서울,7월 하와이 등지에서 연쇄회의를 갖고 북한 체제 붕괴에 따른 대규모 난민사태 발생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연내 성사될 것으로 보였던 남북 정상회담 개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상회담을 향한 남북의 입장차가 여전하다"며 "남측은 북한 비핵화라는 '명분'을,북측은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의 '실리'를 각기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비핵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명확한 개념과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며 "따라서 이에 대한 남북 간 물밑 사전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