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감독 "남북 이야기 해피엔딩으로 다룬 게 흥행 비결이죠"
송강호와 강동원이 주연한 영화 '의형제'가 개봉 38일 만인 지난 13일 500만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투자 배급사인 쇼박스 측이 거둔 총흥행 수입은 극장 몫을 제외한 175억원 정도.여기서 총제작비 75억원을 제외하면 순이익은 100억원 규모다. 상영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익도 늘 전망이다.

이 영화의 연출자는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인 장훈 감독(35 · 사진).저예산 '영화는 영화다'로 데뷔한 데 이어 두 번째 작품까지 연타석 홈런을 쳤다. 광화문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남북 소재를 다뤘지만 해피엔딩이란 게 다릅니다. 지난 10여년간 드라마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코미디 '웰컴 투 동막골'까지 남북한 소재 영화들은 대부분 비극적으로 결말났죠.세월이 흐른 만큼 남북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한 게 관객들에게 어필한 듯 싶습니다. "

'의형제'는 국정원 요원(송강호)과 남파 간첩(강동원)이 동일한 사건에서 각각 임무에 실패하고 서로의 조직에서 버림받은 6년 후 우연히 생업 현장에서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장 감독은 이런 내용의 원작 시나리오를 각색해 연출했다. '영화는 영화다'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작가가 아니라 연출자입니다. 매력적인 원작의 취지와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고,하려는 얘기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했죠.그래서 도입부의 자동차 추격전과 6년 뒤에 벌어지는 후반부 액션의 강도가 너무 차이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췄습니다. 차이가 크면 관객들이 어리둥절하거든요. "

그는 또 "장면마다 재미를 주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재미는 친절하게 전달하는 한 방식이거든요. 그렇지만 남북 소재인 만큼 너무 가벼워지지 않도록 결말은 진지하게 이끌어냈습니다. 마지막 남북 요원들의 대결장도 전쟁기념관에서 하려던 것을 종로 한복판으로 바꿨습니다. 상징성보다 현실성을 선택한 거지요. "

이런 시도는 모두 관객을 영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참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관객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관객들이 극 중 인물의 감정과 일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가려 했죠.액션은 인물들이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요. 과도한 액션은 드라마를 해치니까요. "

그러나 그는 송강호와 강동원의 연기를 흥행 요소 중 으뜸으로 꼽았다.

"강동원이 주연한 '전우치'를 보면서 부러웠던 건 연기 잘하는 조연이 많아 풍부한 느낌을 살려낸 거였어요. '의형제'에서는 그런 조연들이 적습니다. 그런데 송강호씨가 조연 역할까지 커버해줬어요. 주연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조연들이 주는 재미까지 덤으로 줬으니까요. 강동원도 '전우치'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줬어요. 남파 간첩 역은 이 영화의 감정선을 쥐고 있는 중요한 배역인데 그것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하게 표현했습니다. "

이 감독은 원래 '할리우드 키드'는 아니었다. 1975년 강원도 정선에서 출생한 그는 1998년 군에서 제대한 뒤 1999년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고 2003년 졸업했다. 그해 10월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연출부로 들어가 영화계에 입문해 '활''시간' 등의 조감독을 지냈다.

"디자인은 공간이나 환경 등 사람 주변의 얘기를 풀어내지만 영화는 사람 자체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게 매력적이어서 영화계에 뒤늦게 뛰어들었지요. "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이 자신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를 제자인 장 감독에게 건네주면서 투자까지 유치해준 작품."김 감독께는 사람과 인생에 대한 태도를 배웠습니다. 영화는 인생과 같다고 늘 말했습니다. '의형제'를 두고는 '너무 가벼우면 날아가버리고,너무 무거우면 가라앉는다'는 지침을 줬고요. 김 감독은 평소 '영화는 남의 돈으로 찍는 만큼 제작비를 돌려주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평생 가져가야할 말이죠."

그의 차기작은 6 · 25 때 치열했던 고지 쟁탈전을 다룬 '고지전'이다. 내년 여름 개봉 예정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