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할아버지' 송해씨(83)는 활력이 넘쳤다. 쏟아지는 질문에도 순발력 있게 대답했다. 평소 저녁 식사로 설렁탕 한 그릇에 소주 두 병을 거뜬히 해치우는 '건강 지수'가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올해 30돌을 맞은 KBS 1TV '전국 노래자랑'에서 26년간 MC로 활약해왔다. 1980년 11월9일 첫 방송된 이 프로에서 1984년부터 진행자로 나선 것이다. 국내 최고령 MC이면서 최장수 프로그램의 최장수 MC인 셈이다. KBS는 28일 오후 9시40분 송씨를 진행자가 아닌 게스트로 초청해 '국민과 함께 30년'이란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26일 KBS 본관에서 그를 만났다.

"20여년 전과 비교하면 세상이 완전히 변했어요. 예전에는 대부분의 여성이 한복을 입고 파마 머리로 출연했어요. 이제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늘 새롭고 긴장됩니다. 저는 '이게 내 첫 프로다'란 마음가짐으로 항상 임합니다. "

그는 '전국 노래자랑'이 자신의 건강도 지켜줬다고 말했다. "이 프로를 열심히 하니까 제 건강도 따라왔어요. 수많은 출연자의 기(氣)를 받아 약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배급소 역할을 하면서 제 스스로 건강해졌죠." 그는 "3세부터 103세까지 1세기에 걸친 사람들이 나와 노는 마당이 '전국 노래자랑'"이라면서 "세살배기 꼬마가 유학 중인 아빠를 향해 연기자처럼 감정을 다잡고 '아빠 아프지 말아'라고 외쳐 관중을 울렸던 일화는 지금도 생생하다"고 술회했다.

출연자들과 만나면서 그는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방송 도중 상한 냄새가 나는 생선을 받아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면 무안해하니까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야 했어요. 그걸 삼키면서 속으로 제발 배탈 나지 말라고 기도했죠.다행히 한 차례도 탈난 적은 없었어요. "

그동안 거쳐간 연출자 120명의 마음도 잘 읽었다. 프로그램의 시어머니 격인 연출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했더라면 일찌감치 도중하차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프로가 사람들에게 친근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저기 송해 간다''노래자랑 간다'고 말했지만 요즘엔 '빠빠방'이라고 프로그램 시그널을 부릅니다. 그만큼 가까워진 거죠.출연 여성들도 개방적이고 활달해졌어요. '뽀뽀'하거나 끌어안는 게 예사예요. 저를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거지요. "

그는 평양 모란봉 공원과 일본 왕궁 옆,중국 선양의 대형 경기장,지구 반대편에 있는 파라과이와 뉴욕 아이젠하워 공원 등에서도 교민들과 함께 특집을 꾸몄다. 그러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제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해보는 게 꿈입니다. "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남들이 한가할 때 자신은 바빴고 가족과 '바람 쐬러' 간다해도 사람 없는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술은 가장 가까운 친구다. "술은 정말 정직해요. 평소 먹은 마음이 술을 마시면 드러난다고 하지 않아요? 전 소주만 마셔요. 한자리에서 두 병 정도 마시고 3차까지 가기도 합니다. 다만 소주 도수가 낮아지는 게 불만이에요. 23~24도는 돼야 하는데…."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