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힘을 잃으면서 프로그램 매매에 휘둘리고 있다. 외국인의 주식 매수마저 시들해짐에 따라 이렇다할 투자 주체가 없다 보니 거래 부진 속에 프로그램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코스피 200지수와 25개 종목의 선물 · 옵션 만기가 겹치는 다음 달 11일 '쿼드러플 위칭데이'(네 마녀의 날)까지는 선물과 연계된 프로그램 매매 향방에 따라 시장이 출렁이는 변동성 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프로그램이 주가의 캐스팅보트

25일 증시에서 프로그램 순매도는 1074억원에 달해 주가를 압박했다.

외국인은 주식(현물) 시장뿐 아니라 선물 시장에서도 4000억원 넘게 '팔자' 공세를 펼쳐 현 · 선물 가격차인 베이시스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최근 3일간 선물 시장에서 8400억원가량 순매도해 프로그램 매물을 유발하고 있다.

수급 사정이 나빠진 가운데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설연휴 직후인 지난 16일 이후 이날까지 8일 중 프로그램 매매 방향과 코스피지수 움직임이 일치하는 날이 6일이나 된다. 해외 변수가 잇따르면서 투자심리가 취약해진 사이에 프로그램이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순매수가 2300억원을 넘었던 지난 17일엔 지수가 26.38포인트 올랐고 19일엔 프로그램 순매도에 급락했으며 22일엔 4800억원의 프로그램 매수 우위를 바탕으로 급반등 장세를 연출했다.

여기엔 주식 거래가 극히 부진한 것이 큰 원인이다.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은 지난달만 해도 평균 6조원을 넘었지만 이달 들어서는 지난 18일부터 이날까지 6일째 4조원 이하로 급감한 상태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외국인과 기관 사이에 일부 매매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거래대금이 워낙 적다 보니 프로그램 물량이 주가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설연휴에서 돌아온 외국인이 잠시 순매수 행진을 벌이는 듯했지만 다시 매도 우위로 돌아선 것도 시장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현재 활동하는 외국인 중에는 단타성 매매에 치중하는 세력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급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에 새로 등록한 외국인 투자자 중 케이맨군도와 룩셈부르크 등 조세회피 지역에 본사를 둔 외국인은 35명 늘어났다. 이들은 미국계 등에 비해 단기 투자성향이 강한 편이다.

◆차익매매 동향 주시해야

증시 분석가들은 시장 에너지가 취약해져 프로그램에 따라 출렁이는 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3월 '쿼드러플 위칭데이'를 앞두고 선물과 프로그램 동향에 유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선 · 현물 간 가격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차익거래 동향이 중요한 변수라는 지적이다. 이날도 차익 매도가 전날(548억원)의 3배 가까운 1600억원에 달해 증시 수급을 압박했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지수선물 거래액 대비 프로그램 차익매매 비율은 1월 1~2%에 그쳤으나 이달 들어선 지난 10일과 12일에 각각 7.7%에 달했고 22일에는 6.7%를 기록하는 등 급증하는 추세다.

심 연구위원은 "통상 이 비율이 7%를 넘어가면 코스피지수 방향성이 프로그램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며 "프로그램은 여러 대형주를 묶어 거래하기 때문에 현물시장에서 매매 주체들이 약할 때는 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심재엽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로화 등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외국인이 이틀째 현물 주식과 선물을 순매도하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 상황을 감안하면 3월 만기일을 앞두고 프로그램 매물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프로그램 중 선물과 연계되지 않은 비차익 매매는 지난 16일부터 8일째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어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차익거래의 연속 매수세가 그나마 위안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며 "변동성이 커질 수 있으므로 목표수익률을 낮추고 단기로 대응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