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이몽룡 사장 "HD=스카이라이프" 광고카피 직접 쓰는 CEO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 · 일 양국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6년 7월.KBS1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안녕하세요,이몽룡입니다'를 진행하던 앵커의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독도 주변의 긴박한 상황을 청취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독도경비대장을 전화로 연결했지만,난생 처음 생방송에 출연한 상대가 워낙 긴장한 탓에 인터뷰가 술술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 상황이 어때요?"라는 첫 질문에 독도경비대장은 "조용합니다"라고 짧게 답하고는 입을 닫았다. 어라,이게 아닌데 싶었던 앵커는 곧바로 일본 순시선의 출몰에 어떻게 대처할 작정이냐고 물었다. 상대는 "보안사항이라서 얘기 못한다"고 하고서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순간,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미리 10분짜리 인터뷰 시간을 짜놓은 터였다.

그는 당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삽살개 '독돌이'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반응을 보였다. 아주 짧은 답변 속에서도 여유를 찾은 앵커는 관광객 반응 등을 섞어가며 원하던 이야기들을 풀어갈 수 있었다. 1년4개월 동안 시사뉴스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진행하면서 다진 순발력과 운영 노하우는 나중에 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이 앵커가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이몽룡 사장이다.

◆기자에서 HD 전도사로

이몽룡 사장은 2008년 3월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서비스하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최고경영자(CEO)를 맡자마자 현장부터 찾았다. 20여일간 전국의 지사와 고객센터를 돌았다. 그러던 중 서울 시내에 있는 대형 가전양판점을 찾았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장은 디지털TV를 사려는 고객을 가장해 "디지털TV를 사면 스카이라이프를 볼 수 있습니까?"라고 매장 직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매장 직원은 "스카이라이프는 디지털방송이 안 됩니다. HD(고화질)방송 보려면 케이블방송에 가입하셔야죠"라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양판점 직원이 이런데 일반인은 오죽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이라이프의 정체성이 디지털방송이라는 사실부터 다시 알려야 할 판이었다. 이 사장은 즉각 마케팅본부장을 호출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광고 마케팅을 지시했다. 그는 'HD 전도사'를 자처했다. 어딜가나 HD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HD는 스카이라이프의 구세주가 됐다. 2만5000명에 불과하던 HD방송 가입자는 취임 2년 만에 52만명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총 가입자 수가 210만명에서 250만명으로 증가했다. 월 8000원 수준이던 가입자당 매출도 1만원대로 높아졌다.

◆광고카피 직접 만들어

작년 초 TV전파를 탄 스카이라이프 광고는 파격적이었다. 야구 방망이에 맞은 공이 외야 펜스를 훌쩍 넘어가는가 싶더니 TV 브라운관을 박살냈다. 그리곤 'HD 본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카피가 떴다. 디지털TV를 장만했다고 HD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계도성 광고였다.

이 광고는 심의 과정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내용이 너무 허황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조목조목 설명하고서야 가까스로 심의를 통과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방송광고 심의위원들조차 HD방송을 제대로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시청자에게 스카이라이프의 정체성을 각인시킨 이 광고는 이 사장의 작품이었다. 광고 문안도 직접 뽑았다. 뭘 잘못했는지 신군부 시절 KBS에서 해직된 뒤 삼성테크윈에서 미놀타카메라 광고 업무를 맡았던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파격 소통으로 조직을 깨우다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임원회의는 로마시대 원로원 회의를 닮았다. 매주 수요일에 사업 현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뒤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 사장이 취임한 뒤 바꿔놓은 시스템이다. 팀장회의도 마찬가지다. 한사람보다 열 사람이 더 낫다는 격언처럼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소신에서 회의 방식을 바꿨다.

권위적인 분위기도 없앴다. 이 사장은 체육대회 때면 운동장에서 직원들과 몸을 부딪친다. 회식 때는 양복 상의를 벗어던지고 직접 폭탄주를 제조한다. 직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애창곡도 멋드러지게 부른다.

이 사장의 격의없는 모습에 직원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했다. 권위를 내세우고 임기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식의 경영자들에 익숙했던 탓이었다. 직원들과의 벽이 무너지면서 이 사장에게 인생상담 메일을 보내는 직원도 생겼다. 고객센터의 여직원이 보낸 '몽룡 오빠 사랑해'라는 휴대폰 문자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일화는 아직도 사내에 유명하다.

◆뚝심으로 난관을 뚫다

내부 직원들은 HD 광고에 대해 처음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4000억원이 넘는 누적 적자만 키우게 될 게 틀림없다","영업 현장의 실상을 너무 모른다" 등의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40억원이 내년에는 400억원,그 다음 해에는 4000억원의 효과를 낼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광고 효과는 예상외로 금세 나타났다. 광고가 나간 작년 초부터 요금이 비싼 HD방송을 보려는 가입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수익 구조를 갉아먹던 저가상품도 과감히 정리했다. 그는 수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저가상품 정리가 필수적이라는 아서디리틀(ADL)코리아의 컨설팅 보고서를 근거로 월 3000~4000원에 불과했던 저가방송 상품 판매를 중단시켰다. 이 조치로 가입자의 4분의 1인 50만명이 뚝 떨어져 나갔다. 가입자 유치 수수료 수입으로 운영하는 지방 유통대리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조직적으로 영업을 거부했다. 본사로 달려와 "이러다간 모두 망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버텼다. 영업망이 마비됐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힘겨운 싸움은 결국 2개월 만에 막을 내렸고,스카이라이프는 '고급 브랜드'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 말라

이 사장은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학구파 CEO다. 사내에서 3차원(D) 방송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2년 전부터 3D방송시대를 내다보고 꾸준히 자료를 수집해 온 결과다. 스카이라이프가 지난 1월1일 세계 최초로 24시간 3D방송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이런 사전 준비 덕분이었다.

신기술에 대한 관심은 방송사 시절에도 남달랐다. 2005년 KBS부산총국장 시절,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관련 뉴스를 생방송으로 보도하면서 통신위성이 아닌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국내 첫 시도였다. 당시 기술부서에서는 방송 사고 난다며 반대했지만 "내가 책임지겠다"며 소신을 관철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직원들에게 'Here and now(지금 당장)'라는 말을 자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혁신적인 발상도 뭔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사장은 국내 유료 방송사로는 처음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HD 및 3D방송으로 쌓은 노하우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