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그것도 사측이 아닌 노동조합이 직접 나서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한 위기 극복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난 2년간 지속된 '수주 가뭄'에 따른 위기감이 그만큼 고조돼 있다는 반증이다. 현대중공업의 인력 재배치를 계기로 국내 다른 대형 조선사들의 인력 및 사업조정도 잇따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불황

이달 기준으로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총 523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2008년(6750만CGT)보다 4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 향후 인도할 물량도 많다. 올 하반기부터 상선 수주 물꼬가 터지지 않으면 조선소를 더 이상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선사들의 선박 계약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독일 선박금융업체 로이드폰즈는 한진중공업에 발주한 컨테이너선 2척에 대한 계약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발(發) 재정 위기'가 선박금융을 더 위축시키면서 이미 발주된 선박마저 수주 취소와 인도 연기에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선가마저 계속 하락세다. 지난해 1월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2만716달러였던 컨테이너선 가격은 이달 들어 1만6396달러로 떨어졌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선가 하락으로 인해 선박 수주를 일부러 하지 않는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아직 운영자금이 일부 남아 있기 때문에 선박 수주 시점을 조금이라도 더 늦춰 수익성 악화를 최대한 피해보자는 전략이다. 대우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등 일부 조선사들은 후판 및 인건비 조달 등에 필요한 단기 운영자금 확보를 위한 '생존형 수주'에 나섰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벌크선,소형 유조선,특수선 등도 가리지 않고 있다.

◆조선업계 "올해가 더 걱정"

조선시황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견 및 중소 조선사뿐만 아니라 대형 조선업체들마저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상선 수주가 끊기면서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은 데다 이미 수주한 선박의 건조대금 유입마저 늦춰지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올해도 선박 발주량이 기대 이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영국 조선 · 해운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선박 수주 전망치는 작년보다 79.3% 늘어난 1090만CGT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10년(1998~2008년) 평균치인 4180만CGT와 비교하면 4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내년에도 과거 10년 평균치의 절반 정도인 1860만CGT에 머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유럽 및 미국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으면서 전 세계적인 조선 · 해운 시황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며 "선박금융 악화로 인해 올해 선박 발주도 크게 늘어나긴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업체들도 "인력조정 불가피"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형 조선업체들도 인력 재배치나 감원 등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일감이 부족한 조선사업본부 정규직 직원 700명을 다른 사업본부로 전환배치하는 데 합의했다. 회사 관계자는 "연간 140~160척 정도를 수주해야 선박 건조 시스템이 유지된다"며 "요즘 같은 상황에선 인력 조정을 통해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대형 조선업체들도 '폭풍 전야'다. 일부 업체들은 최근 외주 협력업체들을 사내 직영 업체로 돌리는 등 사업구조 개편을 통한 '내핍경영'을 확대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최근 직원 352명에 대한 정리해고 방침을 통보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