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올해,망국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두 편이 주목받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린 소설가 이문열씨의 《불멸》(민음사)과 강제로 일본 귀족과 결혼해 평생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던 덕혜옹주를 소재로 한 《덕혜옹주》(다산책방)가 그것.

◆조선의 마지막 황녀,덕혜옹주

소설가 권비영씨의 《덕혜옹주》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누구보다 귀한 존재였지만 모두가 외면했던 그 여인'으로 덕혜옹주를 묘사했다.

덕혜옹주는 이 책 출간 이전에는 일본 여성사 연구가가 쓴 번역서 한 권이 국내에 나온 관련 서적의 전부일 정도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인물이다.

소설은 아버지 고종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아름답고 영특하게 자랐던 덕혜옹주가 일본의 흉계로 이리저리 휘둘리다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해야 했던 행로를 따라간다. 귀한 몸으로 태어났기에 감당해야 했던 치욕도 혹독했다. 끌려가다시피 한 일본 유학생활 내내 일본인들의 비웃음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 첫눈에 서로 끌렸던 남자와는 맺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 황녀의 격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일본 귀족을 결혼 상대로 들이민다. 대마도 번주의 양자인 소 다케유키 백작은 악한 남자는 아니었지만,덕혜옹주의 한맺힌 마음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망국의 황녀이기에 쌓여가는 고통과 분노,점점 소원해지는 남편,조선인의 피가 절반 흐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고국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결국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덕혜옹주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에 로맨스나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 중에는 소설적 설정이 많다. 특히 신산한 삶에도 옹골차게 버티려 애썼던 덕혜옹주의 모습을 크게 부각시켰다. "난 물이 깊어도 건널 테고 휘어지느니 차라리 부러지고 말겠어요!"라고 외치는 황녀는 사뭇 결연하다. 이 소설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입해 관심을 끌었다.

◆불멸의 기억으로 타오를 안중근 의사

'순직(純直)하고 경건한 영혼은 한 번 조국의 부름을 듣자,무슨 정연한 전기를 쓰듯 살아온 30년 남짓의 짧은 생애를 아낌없이 그 제단에 봉헌하였다. …(중략) 이렇듯 단호하고 자명한 길을 한 번 주저함도 없이 달려간 듯 보이는 그의 불꽃같은 삶은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불멸의 기억으로 타오를 것이다. '

소설가 이문열씨의 장편소설 《불멸》에서 안중근 의사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다른 일에 정신을 팔기에는 가혹한 시대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안 의사의 삶은 경건함 그 이상이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불멸》은 "떳떳한 무덤 자리를 찾으면 서슴없이 나를 내던져야 하는 것이 대장부외다"라고 선언했던 10대 시절부터 "나는 조국에 대한 내 의무를 다하였다. 이미 각오하고 한 일이므로 내 죽은 뒤의 일을 두고는 아무것도 더 남길 말이 없다"라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일대기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내내 안 의사를 올곧은 영웅으로 조명해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망국의 자존심을 세운 안 의사의 삶에는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숙연함'이 깃들어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