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도쿄의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 전자제품 매장.40 · 50대의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통역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친구들과 관광을 왔다는 뤼예펑씨(48)는 38만엔(약 500만원)짜리 캐논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를 3개나 샀다. 같은 단체관광팀의 왕란씨(55 · 여)는 4만9000엔(약 64만원)짜리 조지루시(일명 코끼리표) 전기밥솥을 5개 구입했다. 왕씨는 "친척들과 시집간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밥솥을 샀다"며 "일본제 밥솥은 중국에서도 인기"라고 말했다.

통 큰 중국 관광객들이 꽁꽁 얼어붙은 일본의 소비시장을 녹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설날) 연휴(13~21일)를 맞아 일본을 찾은 중국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예전보다 커지면서 일본의 백화점 가전양판점 등 유통업계가 특수를 맞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주로 찾는 인기 상품은 전기밥솥 디지털카메라 손목시계 등이다. 중국인들의 쇼핑 특징은 수십만엔(수백만원)씩 하는 고가품을 선호한다는 것.가전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의 아키하바라점 점원인 오하시 도시히로씨(32)는 "전기밥솥의 경우 작년까지만 해도 2만~3만엔짜리가 주로 나갔지만,올해는 4만~5만엔짜리 제품이 인기"라며 "디지털 카메라도 중국 관광객들은 고가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으로 고소득층이 급속히 늘어난 때문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해외 여행을 다녀오며 친척과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문화가 있어 똑같은 제품을 수개씩 구매하는 것도 두드러진 점이다.

이런 손 큰 중국 관광객들 덕분에 일본 유통업계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고급 백화점 다카시마야 본점에서는 지난 13~15일 중국 홍콩 대만 관광객의 상품 구매 후 면세 수속 건수가 작년 춘절 연휴 사흘간(1월24~26일)의 2.5배로 급증했다. 미쓰코시백화점 긴자점도 같은 기간 중국인 구매 건수가 30% 늘었다.

일본 내 관광지도 춘절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유명 온천지인 하코네의 호텔프린스는 올해 춘절 기간 중국인 관광객이 연일 전체 투숙객의 약 20%를 차지했다.

특히 후지산이 보이는 객실(1박에 4만5000~6만6000엔,약 59만~86만원)은 중국 관광객들이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일본 정부 관광국에 따르면 2007~2008년 방일 외국인의 1인당 평균 상품 구입비는 중국인이 7만8680엔으로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의 약 3배에 달했다. 중국인이 쇼핑 후 주로 결제하는 수단인 은행 신용카드 결제금액은 작년 1년간 약 200억엔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중국 관광객 유치 확대를 위해 까다로운 비자 조건을 완화할 계획이다. 일본은 현재 중국인에 대해 단체관광객은 관광비자를 쉽게 내주면서도 개인 관광객은 연수입 330만엔(약 4300만원) 이상인 경우만 혜택을 주는 등 엄격하게 비자 관리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개인 관광객의 연수입 금액을 낮추고, 세대주가 관광비자를 받은 경우 가족은 자동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관광국 관계자는 "중국인 해외 관광객은 연간 4500만명으로,이 중 일본을 찾는 인원은 2%인 100만명에 불과하다"며 "중국인 관광객을 늘릴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