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A건설사의 김모 부장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얘기인즉 글로벌 금융위기로 1년 전부터 주택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경기도와 지방에서 회사가 떠맡긴 미분양아파트 3채가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합하면 분양가만 10억원에 가까운 아파트들을 "회사가 어려우니 임직원들이 모범을 보이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분양을 받은 것이다.

사실 김 부장의 사례는 건설업계에선 관행처럼 벌어진다. 하지만 외환위기 등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직원들이 떠안았던 미분양 물건의 경우 2000년 초부터 주택시장이 급격한 활황장세로 돌아서면서 오히려 웃돈까지 챙겼던 경험도 있다. 이런 학습효과 때문에 일부 건설사 직원들은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엔 외환위기 학습효과가 그대로 나타나지도 않는 것 같아 더욱 불안하다고 한다. 작년 초 다니던 B건설사를 그만두고 건설 관련 중소기업에 재취업한 정모 차장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2000년대 초반 서울 도심에서 B건설사가 분양했다가 미분양된 주상복합아파트를 떠맡았던 정모 차장은 B건설사에 분양권을 다시 되팔았다. 주택경기가 살아나면서 웃돈이 붙자 B건설사로부터 '분양가에 다시 뱉어내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주택전문업체 직원들의 걱정은 재작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주택시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더 커지고 있다.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개인 파산의 벼랑까지 내몰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모 중견건설사의 조모 과장은 미분양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은행 빚에 대해 회사 측이 중도금 대출이자를 갚지 않아 고통을 겪었다. 해당 은행으로부터 개인재산 압류 조치와 함께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은 것.

주택건설 업체들의 경영난은 올 들어서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 떠맡기기'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로써 건설사 직원들의 개인파산 공포도 되풀이되고 있다. 은밀히 이뤄지고 있는 건설업계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노경목 건설부동산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