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이 8거래일 사이에 1조3000억원 가까운 매물을 쏟아내면서 외국인과 함께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기관의 '주포'격인 투신은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가 끊임없이 이어짐에 따라 환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연일 정리하고 있다.

작년 4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예상치를 밑돈 데다 미국의 예산 동결 가능성과 중국의 대출 규모 축소 등 해외발 악재가 투자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만 연기금은 코스피지수가 1630선까지 밀리자 저가 매수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투신의 순매도는 시장 전망이 비관적으로 바뀐 탓이라기보다는 펀드 환매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라며 지수가 1600선 초반으로 밀리면 기관 전체적으로는 매수로 기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펀드 환매 대응에 바쁜 투신

26일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이 1900억원 이상 순매도하며 32.86포인트(1.97%) 급락한 1637.34에 장을 마쳤다. 수급선인 60일 이동평균선(1636)마저 무너질 위기에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중국과 미국의 긴축 우려감이 외국인 투자심리를 억누르고 있다.

장 초반 반짝 상승하기도 한 증시는 투신 증권 보험까지 순매도에 가세하며 낙폭을 키웠다. 증권과 보험이 각각 815억원,728억원을 순매도했으며 투신은 160억원 넘게 처분하는 등 기관 전체로는 1076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여기에 선물과 연계된 프로그램 차익 순매도가 3400억원이나 쏟아지면서 지수 하락을 부채질했다.

신한금융투자 법인영업부 관계자는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보험이 먼저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식 비중을 낮춘 것으로 보인다"며 "증권사들의 순매도는 외국계 모건스탠리에서 상품 운용을 위해 보유한 주식을 판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투신사들의 순매도세도 지속되고 있다. 투신은 지난 8일간 1조원가량의 주식을 정리했다. 투신의 순매도는 대부분 펀드에서 빠져나가는 돈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 기간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이탈한 자금은 7600억원으로 투신의 순매도 금액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최인호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개인 고객들의 환매에 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식을 팔고 있다"며 "시장을 나쁘게 보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도 "실제 전날에 이어 국내 증시가 크게 하락하면서 국내 주식형펀드 환매 규모가 줄어들자 투신의 순매도 규모도 하루 1000억원대에서 100억원대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연기금 저가 매수 가능성

그나마 연기금이 시장을 받치고 있다. 연기금은 지난 18일 1675억원어치의 주식을 거둬들이며 1년여 만에 가장 많이 사들인 뒤 전날 56억원어치 판 것을 제외하면 꾸준히 매수세를 유지하고 있다. 연기금은 이날도 장 중반까지는 '팔자' 우위였지만 지수 하락폭이 커지자 117억원의 순매수로 돌아섰다.

연기금에 정통한 운용사 관계자는 "자금 운용 계획상 올해 13조~17조원 정도 주식을 사야 하는 국민연금은 주가가 더 떨어지면 매수세를 유입시킬 것"이라며 "해외 악재들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인 만큼 국민연금은 주가 수준에 따라 자금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최 본부장은 "연기금을 비롯해 지난해 투자 기회를 놓쳐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내지 못한 기관을 중심으로 자금을 집행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수 1600선 근처에서는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환매 압력도 1600선 초반에서는 잦아들 것이란 전망이다. 1600~1700선 사이에 몰렸던 국내 주식형펀드 자금의 상당부분은 이미 손바뀜이 이뤄진 데다 기존 투자자들의 경우 1700선을 넘어서야 환매 욕구가 다시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정환/김재후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