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의 맨 얼굴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정원에 담긴 지혜는 어떤 것일까.

'미스터 소나무'란 별명으로 유명한 사진 작가 배병우씨(60 · 서울예술대 교수)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년간 창덕궁의 사계를 렌즈에 담았다.

배씨는 1991년부터 20년간 찍은 창덕궁의 표정을 모아 《창덕궁:배병우 사진집》(컬쳐북스)을 펴냈다. 그가 포착한 창덕궁의 속살은 우리 전통 궁궐과 자연에 대한 자긍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배씨는 창덕궁을 한마디로 '행복한 정원'으로 정의한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이 인공적이라면,창덕궁은 인간 친화적인 정원이라는 설명이다.

"창덕궁의 공간 배치도 알함브라 궁전과 비슷해요. 후원이 있고 곳곳에 작은 연못이 있는 점이 그래요. 다만 창덕궁은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검소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점에서 '무욕의 안식처'라고나 할까.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해 리드미컬하게 대상을 포착했습니다. "

붓 대신 카메라로 그림을 그린다는 그는 사진 속의 창덕궁 풍경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져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모성적인 미감이 돋보인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아요. 정원 속에서 자연을 만나고 이상을 품었거든요. 세월이 흐르고 정원의 모습은 변했지만 그 속에는 모성적인 포근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해 졌으면 좋겠어요. "

나라의 큰 행사가 열리던 인정전을 비롯해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세운 부용지,구불구불 물길을 만들어 술과 시를 즐기던 옥류천,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했던 주합루 일원 등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고루 망라한 사진 180점이 저마다의 색깔로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 건축물들이 사진 작품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거든요. 저도 한국의 문화유산을 국제 무대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창덕궁을 찍게 됐지요. "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모르지….예술이든 인생이든 그냥 아름다우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진집 출간이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용기를 가질 수 있는'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작가는 앞으로 남해 바다와 남해안의 나무와 꽃을 테마로 작업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