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대규모 국제행사 총연출…VIP일정 分단위까지 챙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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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회의 기획사 이순용씨
지난달 2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한국-중앙아시아 협력포럼' 개막 시간인 오전 9시가 다가오자 회의장 인근을 바쁘게 뛰어다니던 이순용씨(35)의 전화기에 불이 났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각국에서 온 주요 참석자들을 수행하러 나간 직원들이 도착 예정 시간을 속속 보고해 온 것.
꼼꼼하게 도착 시간을 받아 적은 그는 행사 순서에 따라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적어 놓은 큐 시트(cue sheet)를 다시 점검했다. A4용지 3장 분량의 큐 시트에는 '8시57분~9시 VIP 도착' '9시1~3분 VIP 입장' '9시30~40분 1번 중계카메라 작동' 등 해야 할 일들이 분(分) 단위로 빼곡히 적혀 있다.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주요 인사들을 챙기다 보니 점심식사를 건너뛰었다. 오후 6시에 행사가 끝나자 여분의 배터리 2개를 갈아끼운 휴대폰의 전원이 나갔다. 그날 걸려온 전화만 200여통이었다.
이씨의 직업은 국제회의 기획사(PCO · 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정상회의,민간 학술대회 등 각종 국제회의를 유치 단계부터 뒷마무리까지 총괄하는 전문가로,국제회의 기획 · 운영 전문회사인 유니네오의 10년차 PCO다. 국제회의라는 거대한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연출자인 이씨를 1일 만났다.
▼업무 분야가 방대할 것 같습니다.
"회의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모든 분야가 제 일이죠.요즘은 회의 유치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제안서를 함께 만들기도 합니다. 국제회의를 유치하면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돼요. 연사 섭외,참가자 신청 접수,목록 작성 및 비표 발급,대회 홍보 등 할 일이 많아서 큰 규모의 국제회의는 1년 전부터 준비해요. "
▼부문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겠군요.
"회의 준비는 크게 등록,회의 운영,사교 행사 운영,의전 · 안전 · 수송 등 4개 분야로 합니다. 그중 등록 분야는 사전에 초청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인 경우 신원 조회 후 비표를 발급하는 등 회의 참여와 관련한 전반을 다루는 일입니다. 제일 많은 시간과 품이 들면서도 티는 나지 않는 기본적인 업무죠."
▼일이 고되겠어요.
"업계에서 고학력자를 데려다 '노가다(막노동)'를 시킨다고 할 정도로 일이 많습니다. 주 5일 야근을 합니다. 행사계획이 갑자기 바뀌는 등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이죠.기본적으로 일이 워낙 많은 데다 외국 현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업무도 많아서 시차 때문에 밤에 일하는 경우도 있어요. 야근 때문에 지난해 크리스마스도 직원들끼리 보냈죠."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습니까.
"추진하는 프로젝트마다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회의 하나를 끝내면 '유에서 무를 창조했다'는 짜릿함이 있죠.왜 연극배우들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 텅빈 객석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그런 성취감 있잖아요? 저희의 성취감과 비슷한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회의여서 뭔가 배워 간다는 이점도 있고요. "
▼국제회의 기획사가 된 이유는요.
"1999년 한양대 국제대학원에 다닐 때 '1999 서울 NGO 세계대회'의 세션 내용을 요약하는 라포처(rapporteur)로 일했는데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뭔가를 한다는 게 신기했죠.그 이듬해 아셈(ASEM · 아시아 · 유럽정상회의) 준비기획단에 들어가 4개월 동안 해외 대표단 등록 담당 인턴으로 일했어요. 아셈 회의가 무사히 끝나고 나니 역사를 만드는 현장에 있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죠.그래서 졸업 후 국제회의 기획회사에 들어갔어요. "
▼유난히 여성 PCO들이 많던데요.
"PCO의 80~90%는 여성이에요. 꼼꼼하고 섬세하게 챙겨야 할 일이 많아서 남자들은 못 견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해외 출장 등 글로벌한 업무가 많아 항공사 승무원처럼 여성이 선망하는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단단히 각오하지 않고 막연한 선망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빨리 그만둡니다. 경력 5년 정도면 고참급이에요. 제가 10년 정도 일했는데 최고참급이니까요. "
▼유력 인사는 집중적으로 신경 쓰나요
"까다로운 연사들은 정말 세심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사전에 비서 등을 통해 그분의 취향을 상세하게 물어보죠.이를테면 비행기의 경우 일등석을 원한다면 몇 번째 줄을 원하는지,오른쪽 · 왼쪽 중 어느 자리를 선호하는지 물어봅니다. 또 기피하는 음식과 선호하는 음식,돼지고기와 쇠고기,생선에 대한 기호 등을 파악해요. 객실은 흡연 · 금연실 여부와 수행원들의 방과 연결된 커넥팅 룸을 원하는지 여부,코너 스위트 룸과 일반 스위트 룸 중 어느 쪽을 원하는지를 꼼꼼하게 물어봅니다. "
▼기본적인 체크 리스트가 있겠네요.
"매뉴얼이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사람마다 취향이 정말 다양하니까요. 한 번은 주요 연사로 오신 분이 당분이 낮은 특정 브랜드의 설탕을 달라고 했어요. 해외 브랜드라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서울 시내와 수도권 일대를 이 잡듯이 뒤져 한 박스를 갖다 드렸죠.그분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군요. "
▼기억에 남는 회의가 있나요.
"2004년 11월에 열린 '한 · 중 디자인포럼 2004'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베이징에 사전 현장답사를 다녀왔는데도 행사 당일에 보니 사전 협의 내용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은 거예요. 대관 시간이 바뀌고 장소도 좁아졌죠.그야말로 돌발 변수였어요. 다시 담당자를 만나 차근차근 설득하고 사전 협의 내용대로 되돌리기 위해 진땀을 뺐죠."
▼올해 G20 정상회의가 국내에서 열리잖아요.
"지난 10년간 국제회의를 포함해 컨벤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몇 차례 있었어요. 2000년 아셈과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대표적이죠.그 이후 정부 차원에서 참여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회의가 G20 정상회의일 것입니다. 이 기간에는 정부 회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간 회의들도 함께 열리기 때문에 국제회의 전문가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하고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엄청날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민간 사업자 선정 공고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처음 꿈은 제 회사를 차리는 거였는데10년 정도 일하다 보니 제가 경영자 체질은 아니다 싶더라고요. 요즘에는 제가 처음부터 기획하는 회의를 꿈꾸고 있어요. 세계적인 석학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매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전문적인 국제회의 말입니다. 해외에서는 기획사가 주축이 돼 만든 국제회의가 수십년 동안 매년 열리는 사례가 많아요. 일생일대의 목표로 단 하나의 회의를 만든다는 생각,멋지지 않나요? 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뜁니다. "
글=박민제/사진=정동헌 기자 pmj53@hankyung.com
꼼꼼하게 도착 시간을 받아 적은 그는 행사 순서에 따라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적어 놓은 큐 시트(cue sheet)를 다시 점검했다. A4용지 3장 분량의 큐 시트에는 '8시57분~9시 VIP 도착' '9시1~3분 VIP 입장' '9시30~40분 1번 중계카메라 작동' 등 해야 할 일들이 분(分) 단위로 빼곡히 적혀 있다.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주요 인사들을 챙기다 보니 점심식사를 건너뛰었다. 오후 6시에 행사가 끝나자 여분의 배터리 2개를 갈아끼운 휴대폰의 전원이 나갔다. 그날 걸려온 전화만 200여통이었다.
이씨의 직업은 국제회의 기획사(PCO · 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정상회의,민간 학술대회 등 각종 국제회의를 유치 단계부터 뒷마무리까지 총괄하는 전문가로,국제회의 기획 · 운영 전문회사인 유니네오의 10년차 PCO다. 국제회의라는 거대한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연출자인 이씨를 1일 만났다.
▼업무 분야가 방대할 것 같습니다.
"회의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모든 분야가 제 일이죠.요즘은 회의 유치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제안서를 함께 만들기도 합니다. 국제회의를 유치하면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돼요. 연사 섭외,참가자 신청 접수,목록 작성 및 비표 발급,대회 홍보 등 할 일이 많아서 큰 규모의 국제회의는 1년 전부터 준비해요. "
▼부문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겠군요.
"회의 준비는 크게 등록,회의 운영,사교 행사 운영,의전 · 안전 · 수송 등 4개 분야로 합니다. 그중 등록 분야는 사전에 초청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인 경우 신원 조회 후 비표를 발급하는 등 회의 참여와 관련한 전반을 다루는 일입니다. 제일 많은 시간과 품이 들면서도 티는 나지 않는 기본적인 업무죠."
▼일이 고되겠어요.
"업계에서 고학력자를 데려다 '노가다(막노동)'를 시킨다고 할 정도로 일이 많습니다. 주 5일 야근을 합니다. 행사계획이 갑자기 바뀌는 등 돌발 변수가 많기 때문이죠.기본적으로 일이 워낙 많은 데다 외국 현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업무도 많아서 시차 때문에 밤에 일하는 경우도 있어요. 야근 때문에 지난해 크리스마스도 직원들끼리 보냈죠."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습니까.
"추진하는 프로젝트마다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회의 하나를 끝내면 '유에서 무를 창조했다'는 짜릿함이 있죠.왜 연극배우들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 텅빈 객석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그런 성취감 있잖아요? 저희의 성취감과 비슷한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회의여서 뭔가 배워 간다는 이점도 있고요. "
▼국제회의 기획사가 된 이유는요.
"1999년 한양대 국제대학원에 다닐 때 '1999 서울 NGO 세계대회'의 세션 내용을 요약하는 라포처(rapporteur)로 일했는데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뭔가를 한다는 게 신기했죠.그 이듬해 아셈(ASEM · 아시아 · 유럽정상회의) 준비기획단에 들어가 4개월 동안 해외 대표단 등록 담당 인턴으로 일했어요. 아셈 회의가 무사히 끝나고 나니 역사를 만드는 현장에 있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죠.그래서 졸업 후 국제회의 기획회사에 들어갔어요. "
▼유난히 여성 PCO들이 많던데요.
"PCO의 80~90%는 여성이에요. 꼼꼼하고 섬세하게 챙겨야 할 일이 많아서 남자들은 못 견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해외 출장 등 글로벌한 업무가 많아 항공사 승무원처럼 여성이 선망하는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단단히 각오하지 않고 막연한 선망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빨리 그만둡니다. 경력 5년 정도면 고참급이에요. 제가 10년 정도 일했는데 최고참급이니까요. "
▼유력 인사는 집중적으로 신경 쓰나요
"까다로운 연사들은 정말 세심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사전에 비서 등을 통해 그분의 취향을 상세하게 물어보죠.이를테면 비행기의 경우 일등석을 원한다면 몇 번째 줄을 원하는지,오른쪽 · 왼쪽 중 어느 자리를 선호하는지 물어봅니다. 또 기피하는 음식과 선호하는 음식,돼지고기와 쇠고기,생선에 대한 기호 등을 파악해요. 객실은 흡연 · 금연실 여부와 수행원들의 방과 연결된 커넥팅 룸을 원하는지 여부,코너 스위트 룸과 일반 스위트 룸 중 어느 쪽을 원하는지를 꼼꼼하게 물어봅니다. "
▼기본적인 체크 리스트가 있겠네요.
"매뉴얼이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사람마다 취향이 정말 다양하니까요. 한 번은 주요 연사로 오신 분이 당분이 낮은 특정 브랜드의 설탕을 달라고 했어요. 해외 브랜드라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서울 시내와 수도권 일대를 이 잡듯이 뒤져 한 박스를 갖다 드렸죠.그분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군요. "
▼기억에 남는 회의가 있나요.
"2004년 11월에 열린 '한 · 중 디자인포럼 2004'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베이징에 사전 현장답사를 다녀왔는데도 행사 당일에 보니 사전 협의 내용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은 거예요. 대관 시간이 바뀌고 장소도 좁아졌죠.그야말로 돌발 변수였어요. 다시 담당자를 만나 차근차근 설득하고 사전 협의 내용대로 되돌리기 위해 진땀을 뺐죠."
▼올해 G20 정상회의가 국내에서 열리잖아요.
"지난 10년간 국제회의를 포함해 컨벤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몇 차례 있었어요. 2000년 아셈과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대표적이죠.그 이후 정부 차원에서 참여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회의가 G20 정상회의일 것입니다. 이 기간에는 정부 회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간 회의들도 함께 열리기 때문에 국제회의 전문가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하고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엄청날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민간 사업자 선정 공고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처음 꿈은 제 회사를 차리는 거였는데10년 정도 일하다 보니 제가 경영자 체질은 아니다 싶더라고요. 요즘에는 제가 처음부터 기획하는 회의를 꿈꾸고 있어요. 세계적인 석학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매년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전문적인 국제회의 말입니다. 해외에서는 기획사가 주축이 돼 만든 국제회의가 수십년 동안 매년 열리는 사례가 많아요. 일생일대의 목표로 단 하나의 회의를 만든다는 생각,멋지지 않나요? 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뜁니다. "
글=박민제/사진=정동헌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