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신지애 "골프는 선택의 연속…실수도 기회도 자신이 만드는 거죠"
올 시즌 세계 여자 골프계의 최고 뉴스 메이커는 단연 신지애(21 · 미래에셋)였다. 지난해 미국LPGA투어 비회원으로 3승을 거둔 데 이어 올해는 '루키'로 3승을 거둬 신인상,상금왕,다승왕을 휩쓸었다. 마지막 대회에서 아깝게 '올해의 선수상'을 놓쳤지만 세계 골프팬들에게 신지애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고도 남는 성과를 거뒀다.

올 시즌 신지애의 활약은 기업으로 따지면 회사 설립 원년에 창업 대박을 터뜨린 것과 맞먹는다. 신지애가 번 돈만도 상금(26억원),스폰서 계약금(10억원),우승 인센티브(5억원) 등 5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 시즌에는 더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체력 안배를 감안해 올해보다 참가대회 수를 줄이는 데다 한번 치러본 골프장에서 대회를 갖기 때문에 '파이널 퀸'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란 분석에서다.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뒤를 이을 진정한 '골프 여제'로 올라설 것이란 핑크빛 전망도 적지 않다. 남궁 덕 문화스포츠 부장이 지난 26일 서울 역삼동 세마스포츠마케팅 (매니지먼트업체)에서 신지애를 만났다. 그는 때로는 소녀 같은 순수함과 20대 초반 같지 않은 성숙함을 동시에 보여줬다.

▼연말은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크리스마스이브 때 싸이 콘서트에 유소연 박희영 최혜용 김경태 등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선 · 후배들이 단체 관람했어요. 스탠딩 콘서트로 3시간가량 진행됐는데 모처럼 춤도 추고 재미있었어요.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과 예배를 봤어요. "

▼시즌 중 자투리시간에 주로 뭘 했죠.

"여동생(지원 · 18 ·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예정)이나 아빠(신제섭씨)께 '의뢰하면' 드라마와 개그 프로그램을 구해줘요. 최근에는 동생이 '지붕 뚫고 하이킥'을 다운받아 줘 재미있게 봤어요. 개인적으로는 '골드미스다이어리'(골미다)와 '개그콘서트'를 자주 봐요. 골미다에서 6명의 멤버가 서로 어울려 생활하는 게 부러워요. 나이 차가 있는데도 친구처럼 장난치는 것을 보면 신기해요. 아마 투어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 탓에 이런 프로에 끌리는가 봐요. 운동선수들은 선 · 후배 간 깍듯하게 대하잖아요. 경기장 안에서는 라이벌이고 바깥에서는 자유로워도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선 안 돼요. 하지만 연예인들은 웃음을 만들어 내야 하니까 '나보다 더 힘들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

▼1988년생 '세리키즈'와 외국 선수들과는 어떻게 지내나요.

"동갑내기가 7~8명인데 관심사가 비슷해서인지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잘 뭉치고 서로 힘이 되는 친구들이에요. 모건 프레셀,수잔 페테르센,안젤라 스탠퍼드,줄리 잉스터 등 친한 외국 선수도 많아요. 일요일까지 투어 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매주 화요일 신앙모임도 꼭 참가해요. 영어를 잘 한다고 하면 쑥스럽지만 웬만한 인터뷰는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어요. 단어나 문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두려움이 없어서인지 (영어 사용에) 큰 불편함은 없어요. 나이 든 외국 선수들과는 결혼이나 자녀 교육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젊은 친구들과는 사는 동네의 분위기,취미 같은 일상이 대화 주제예요. "

▼미국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은.

"휴대폰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요. 최근 '힐리오'(미국 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SK텔레콤의 이동 통신 브랜드)를 장만했어요. 미국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고 한글 문자도 지원해줘요. 한 달 요금은 국내에서 70만~80만원 정도가 나와 깜짝 놀랐어요. 월 평균 50만원 정도인데 이번에 친구들과 국제전화를 자주 해서 많이 나왔어요. SK텔레콤 소속인 최나연과 박인비 선수가 거리낌 없이 국제통화를 할 때면 부러워요. (웃음)"

▼연간 수입(용돈)이 얼마나 되죠.

"(수입을) 따로 계산해 본 적은 없어요. 우승하면 아빠한테 용돈을 받아요. 어려서부터 노력한 대가로 돈을 받는 보상시스템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따지고 보면 자동차도 노력의 대가죠.지금 타는 차(BMW 328i)는 지난해 홀인원의 부상으로 받았어요. 바깥은 검은 색이지만 안은 온통 빨간색이고 곰 인형도 있어요. 자동차는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좋아합니다. 첫 번째 차는 아빠와 '내기'해서 성취한 거예요. 프로 데뷔 첫해인 2007년 신인상 다승왕 상금왕 등 5관왕을 해서 아빠가 차(BMW 523)를 사줬어요. 안전문제 때문에 비싸지만 외제차를 사주셨지요. 두 번째(아우디 TT)의 경우 아빠가 지난해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4승을 거두면 차를 사주기로 했는데 무려 9승을 하는 바람에 사게 됐어요. 내년 미국에 가면 BMW X6를 살 생각이에요. 이 차가 하이브리드 형태로 나온다는데 궁금해요. 어쨌든 연비가 중요하잖아요. "

▼애틀랜타에서 집을 샀다고 들었는데.

"본의 아니게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했어요(웃음).내년 미국에서 학교 다닐 남동생(지훈 · 13)의 교육문제와 교통 여건을 감안해 애틀랜타 둘루스에 집을 장만했어요. 코리아타운 인근에 있는 집인데 제가 직접 골랐어요. 지하층이 있는 지상 2층 단독주택으로 아주 넓지는 않아요. 지난해 9월 글로벌 경제위기 때 43만달러에 구입했는데 많이 올랐대요. 몇 달 후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근처 같은 구조의 집이 60만달러에 팔렸어요. 은행 경매로 나온 집을 샀는데 신기할 정도로 때를 잘 맞췄지요. "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데 힘든 점은 뭔가요.

"지금까지 18개국,수십 개의 도시를 다니는 바람에 2년 만에 여권 신고란이 꽉 찼어요. 미국 시합은 동부 아니면 서부에 몰려 있어 아직 못 가본 주도 많아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따로 찾아다니지는 않아요. 해외에서는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만든 샌드위치가 가장 맛있다고 해요(웃음).햄버거도 좋아해요. 국내에서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즐겨 먹어요. "

▼우승하면 샴페인 세례를 받는데 술은 할 줄 아나요.

"파티가 자주 열려서 와인과 샴페인은 자연스럽게 즐기게 됐어요. '펨폴즈'(호주 와인)와 '샤토 탈보'(프랑스 와인)를 좋아하는데 좀 고가예요. 캘리포니아(나파밸리) 와인은 약간 달아서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단 것보다는 강하면서도 끝맛이 깔끔한 와인을 선호해요. 한 병까지 먹어본 경험도 있어요. '술은 부모님이나 어려운 분한테 배워야 한다'고 해서 아빠와 와인을 처음 마셨어요. 소주는 선배 언니들이 마셔보라고 해서 한 잔 마신 게 전부예요. "
[월요인터뷰] 신지애 "골프는 선택의 연속…실수도 기회도 자신이 만드는 거죠"
▼한 해가 빨리 지나갔어요. 골프와 인생을 비교한다면.

"미국LPGA 투어 무대에서 뛴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고 상까지 받아 더욱 그래요. 정말 제가 생각한 것보다 골프인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올 시즌에 루키니까 신인상이야 노렸지만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은 3~4년 후에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뿐 아니라 존경하는 선배들과 같이 미국 무대에서 경기를 치르는 게 잘 믿기지 않아요. 골프와 인생은 공통점이 있어요. 첫째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거죠.둘 다 좋을 때와 힘들 때가 있잖아요. 두 번째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죠.캐디나 동반자,가족이 조언해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 해요. 실수도 기회도 골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죠.홀마다 선택의 순간이 있듯이 인생도 선택의 연속이 아닌가요. "

▼골프 때문에 태어나서 세 번 울었다는데.

"올시즌 미국LPGA투어 마지막 대회인 LPGA투어챔피언십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놓쳐서 울긴 했어요. 세 방울 정도 눈물이 맺힌 것 같아요(웃음).워낙 감정 표현이 겉으로 잘 안 드러나는 성격인데 아쉬움이 컸나 봐요. 1타 차이로 놓친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1년에 몇 천타를 치는데 그 1타가 이렇게 큰 차이를 불러오잖아요. 1타의 소중함을 깨달은 만큼 내년에는 더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 때 13오버파 85타를 쳐 예선전에 탈락해 울었고,2007년 한 · 일전 때 부진해서 운 적이 있었어요. "

▼최대 라이벌은 로레나 오초아인가요.

"미국LPGA투어 무대에 뛰는 선수들은 다 실력이 입증됐다고 봐야 하잖아요. 로레나 오초아만 이긴다고 해서 세계 1위가 되는 건 아니에요. 사실 국내 선수가 가장 세 보여요. 스윙도 좋고 잘 치는 게 느껴져요. 또래 친구들이 아직 어리지만 가장 큰 라이벌이죠.제가 운이 좋아서 좀 더 일찍 앞서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해야죠."

▼골프를 앞으로 10년만 친다고 했는데.

"그때가 되면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뒤 채를 놓는 게 목표예요. 골프만 하면 인생이 아깝지 않을까요.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해요. 예술을 즐기는 동시에 아티스트에게 전시 기회를 마련해주는 '열린 갤러리'를 운영해보고 싶어요. 10년 뒤면 서른한 살인데 그때 경영 등 다른 분야를 공부해도 늦지 않다고 봐요. 여동생과 당초 올해 말 카페를 하나 열 예정이었으나 이래저래 바빠 내년 말께나 가능할 것 같아요. 손님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는 색다른 카페를 만들 생각이에요. 지금 컨셉트를 공개할 순 없고 나중에 놀러오세요. "

▼남자친구는 있나요.

"없습니다. 결혼은 (투어 생활) 중간에 자연스럽게 하지 않을까요. 이상형은 사람의 인격 자체를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쉽게 찾기 어렵겠죠(웃음).어려서부터 사회생활을 해서인지 제 스스로 느낀 거예요. 최근 '루저(loser) 논란'이 불거졌는데 사람의 판단 기준을 키로 삼는 건 이해가 안 돼요. "

▼'신지애 스타일'의 골프는 뭔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골프 격언은 '연습이 근육의 지능을 만든다'는 것이에요. 반복된 연습 속에 근육마저도 지능을 가질 정도로 숙달되지 않을까요. 제 스윙은 일관성이 뛰어나다고들 해요. 제 체구에 맞는 스윙을 하기 때문에 체력 고갈이 적고 중심 축이 잘 잡혔데요. 올해 많은 대회에 출전한 탓에 하반기 체력문제로 고전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5년 가까이 20층짜리 아파트를 1시간 만에 일곱 번 오르내려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내년 1월3일께 호주 골드코스트로 전지훈련을 떠나요. 체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거리를 현재보다 10야드 이상 늘릴 생각이에요. "

▼아마추어에게 들려줄 골프 팁이 있다면.

"제가 숏퍼트 때 컵 뒷벽을 친다고들 하세요. 무조건 세게 때리는 건 아니고 컵을 조금 지나갈 정도의 세기로 자신감 있게 스트로크를 해요. 아마추어 골퍼들은 해저드 앞에서 두려워해요. 해저드와 그린 사이에 10m의 공간이 있으면 그 거리 안에 치면 되는데 지레 무서워하는 거죠.일어난 상황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을 미리 걱정하는 거예요. '내가 너를 컵에 붙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감 있게 치는 게 중요해요. 3번 아이언도 안 맞는다고 해서 아예 안 챙기죠.안 될수록 더 부딪치고 노력해야 요령을 터득할 수 있어요. "

▼도움을 준 분이 많을 텐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이 고맙죠.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들과 자극을 주는 나쁜사람들(라이벌)이 그들이죠.최근 팬카페 행사 때 지방에서 몇시간 동안 운전해 온 팬들을 보면서 '내가 뭐가 대단하다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오히려 그분들이 더 대단한 것 같아요. "

▼새해 목표는.

"시즌을 시작하면 더 나은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올해가 '최고의 해'였으면 내년에는 '더 나은 최고의 해'를 만드는 게 목표죠.내년에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싶어요. 올해 제가 우승한 웨그먼스챔피언십이 내년 메이저대회가 됐기 때문에 웨그먼스LPGA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그러면 '올해의 선수상'도 자연히 따라오지 않을까요. "

정리=김진수/사진=김영우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