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감됐습니다. 종가 1183원70전입니다. "

긴박했던 하루가 또 지나갔다. 21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2층의 트레이딩룸.오후 3시가 되자 외환운용팀의 보조 딜러가 외환시장 마감을 알렸다. 이상배 외환운용팀 부장(사진)은 그제서야 여유를 찾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날도 서울 외환시장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최근 미국 달러화의 강세 현상에다 연말 결제를 위한 수입업체들의 달러 매수가 몰리면서 장 초반부터 환율이 상승했다. 결국 전 거래일보다 7원50전 상승,1183원70전에 마감하면서 지난 10월29일(1196원) 이후 두 달 만에 가장 높은 종가를 기록했다.

이 부장은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곳이 시장이라는 걸 보여준 하루"라고 정리했다. 돌이켜보면 어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은 없었던 지난 1년이었다. 특히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던 연초에는 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잠시도 딜링룸을 떠날 수 없었다. 잠깐만 한눈을 팔면 환율이 20~30원씩 올라가 있었고 그에 따라 외환운용팀의 거래 실적도 수십억원씩 오르락내리락했다.

국가 경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고민은 깊어졌다. 사실 환율이 급등락하는 시기는 외환딜러들에게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이 부장은 "환율이 1500원대 후반까지 급등하고 제2의 외환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수익을 올릴 생각만 할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환율 상승에 편승해 달러 매수를 늘렸다가 고점에서 팔았으면 막대한 차익을 냈겠지만 그럴 경우 가뜩이나 급등하고 있던 환율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까 걱정스러웠다. 이 부장은 "수익만 내면 그만인 외국계 헤지펀드와 국내 시중은행의 입장은 다르다"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달러 보유를 늘려야 했지만 정해진 규모를 넘는 달러 매수 포지션을 갖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뒤통수를 맞는 날도 많았다. 북한의 핵 실험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 등이 시장에 영향을 미쳤던 지난 6월 하순이 대표적이다. 이 부장은 "1200원대 중반을 향해 떨어지던 환율이 일시적으로 1300원을 돌파하고 올라갔다"며 "시장이 예상과 다른 흐름을 보일 때 가장 손실도 많이 낸다"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환율은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부장은 "국제 금융시장이 올해 하반기는 돼야 안정을 찾을 것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빨리 회복됐다"며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수가 늘어나고 경상수지가 꾸준한 흑자를 보이면서 환율도 하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그러나 내년 외환시장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재정적자가 많은 유럽 국가들이 신용 위기를 맞을 수 있고 각국의 출구전략도 변수"라며 "환율이 마냥 내려가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수출업체뿐만 아니라 수입업체도 환 헤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입업체가 환 헤지를 하면 환율이 상승할 때 뒤늦게 달러 매수에 뛰어들어 환율 상승 폭을 키우는 일을 막을 수 있고 수출업체의 매도 헤지와 수입업체의 매수 헤지가 균형을 이루면서 환율 변동 폭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글=유승호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