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아사다 마오,표현력의 김연아.'

일본 언론들이 피겨 스케이팅에서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를 비교할 때 즐겨 쓰는 표현이다. 여성 선수로는 유일하게 뛴다는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이 주무기인 아사다 마오와 화려하고도 풍부한 표현력이 장기인 김연아를 가장 선명하게 비교시키는 말이다.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특징과도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건 전자제품이건 흠 잡을데 없는 품질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어서다.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에 비해 기술면에선 한 수 아래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국 기업은 다소 뒤진 기술을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 '표현력'으로 보완해왔다. '기술의 일본 기업,표현력의 한국 기업'인 셈이다.

그런 한국과 일본 기업의 명암이 요즘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요타가 30~40%의 판매 감소로 적자 수렁에 빠진 반면 현대자동차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판매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4조2300억원(약 3260억엔)에 달해 같은 기간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등 일본 9개 전자회사의 영업이익(1519억엔)보다 두 배나 많았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주 이례적으로 '한국 기업이 강한 이유'란 특집 기사를 실을 정도다. 이 신문은 한국 기업의 강점을 글로벌화와 철저한 현지화라고 분석했다.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넘기 위해 세계시장을 적극 공략한 게 일본 기업과 달랐다는 설명이다. 1년간 세계 각지에서 업무 부담없이 생활하며 현지 문화를 이해하도록 하는 삼성의 '지역전문가제'를 단적인 사례로 꼽았다.

LG전자가 중동에서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읽어주는 TV를 내놓고,'101'이란 숫자를 좋아하는 인도인을 대상으론 101 종류의 조리법이 가능한 전자레인지를 판매해 히트시킨 건 모범적 현지화 사례로 지적했다. 역시 '표현력'으로 이겼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완전히 이긴 건 아니다. 주요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일본 내수시장을 뚫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8년간 일본에서 승용차를 팔기 위해 노력했지만 겨우 1만5000대밖에 못 팔고 철수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일본 TV 시장에 도전했다가 지금은 포기한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고 품질의 자국 제품에 길들여진 일본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못 맞춰서다. 일본 기업에 비해 여전히 '2% 부족한 기술' 때문이란 얘기다. 올해 한국의 수출이 세계 9위에 오르고 무역흑자가 40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에 이른다지만 여전히 핵심 부품 · 소재는 대일 수입에 의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연아는 올해 세계선수권대회,그랑프리파이널 등에서 우승하며 아사다 마오를 완전히 뛰어넘었다. 김연아가 단순히 표현력만으로 이긴 건 아니다. 고난도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점프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향상시켜 프로그램 전반의 품질을 높인 게 주효했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완전히 추월할 수 있는 열쇠도 김연아의 성공비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엔 김연아의 우승 소식 못지않게 한국 기업의 승전보도 더 많이 들렸으면 싶다.

도쿄=차병석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