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위기가 터지자 CEO(최고경영자)를 비롯한 대부분 인력을 연구개발 및 양산 거점인 경기도 공장으로 집결시켰다.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1분기 1조원대 흑자달성에 성공했다. "

한 일본 잡지가 삼성전자의 위기경영을 평가한 대목이다. 제목은'빠른 의사결정의 진수'였다. 삼성전자가 올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세계적 기업 중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하고,글로벌 리더에 오를 자격을 갖춘 것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 기업은 3분기까지도 실적 악화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1분기 흑자 전환에 이어 2 · 3분기 어닝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을 내놓으며 올해 사상 최고의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것은 삼성의 전통적 장점인 속도와 전략,그리고 위기경영이었다. 심성은 작년 말부터 위기경영에 들어갔다.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가 빠른 속도로 비용을 줄여 위기에 대응할 체제를 갖췄다. 이후 회복 기미가 보이자 적극적으로 시장 공세에 나섰다. 대표적인 상품이 LED TV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지난 3월 전격적으로 고가의 LED TV를 전 세계에 동시 출시하며 공격 경영을 재개했다. LED TV 조기 출시를 예상치 못했던 경쟁사들은 삼성의 TV판매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시장에서 삼성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어 놓은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중남미,중동아프리카,동남아,동유럽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차별화한 마케팅을 앞세워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노키아를 압박해 가고 있다. 세계 1위인 D램사업도 지난 2분기 동종 업계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며 가장 먼저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1월에는 세계 최초 4기가 DDR3 D램 개발에 성공했다. 7월에는 40나노 D램을 가장 먼저 양산해 미래시장 선점 전략을 차분히 전개하고 있다.

그 결과는 브랜드 파워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삼성은 지난 9월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20위권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갖고 있는 힘이 어떤 것인지 다시한번 확인해 준 한 해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 외에 삼성이 거둔 또 하나의 결실은 조직 문화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점이다. 삼성 관계자는 "1등을 따라가는 추격자일 때는 다양한 회사를 벤치마킹하거나 될 만한 사업을 신속히 결정해 자원을 투입할 수 있었지만 1등의 위치에서는 이것만으론 부족하다"고 말했다. 즉 시장을 앞서가기 위해서는 창의적 문화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삼성은 이를 위해 넥타이를 풀고,근무시간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또 장기휴가를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이끌었다. 연구개발센터도 이른바 '구글캠퍼스'로 만들어 직원들의 창의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바꿔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과거의 '리더를 믿고 따르라'에서 '창의를 기반으로 집단적 지혜를 모으자'로 변했다.

직원들의 기살리기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삼성전자는 임금협상 시기도 아닌데 11월부터 전격적으로 직원들의 임금을 인상했다. 또 상반기 삭감했던 성과급도 원상 회복시켜 준 것은 물론 삭감분도 하반기 성과금에 추가해 주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전통적인 '열심히 일하는(work hard)' 문화에서 탈피해 성과와 업무를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일하는(work smart)' 창조적 조직문화를 구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윤우 부회장도 40주년 기념사에서 "10년 후 매출 4000억달러로 IT(정보기술)업계에서 압도적 1위와 글로벌 10대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인재들이 모이는,모두가 일하고 싶어 하는 초일류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관리의 삼성'에서 '창조의 삼성'으로 변신을 시도한 첫해라는 성과를 남기고 삼성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