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화가 도입되기 이전인 1993년 재미있는 실험을 실시했다. 바로 영국에서 100파운드를 갖고 유럽연합(EU) 전 회원국을 돌면서 각국 화폐로 환전을 계속해 나간 것이다. 당시 EU 12개 회원국을 돌면서 네덜란드 '굴덴',덴마크 '크로네',독일 '마르크',이탈리아 '리라',스페인 '페세타',그리스 '드라크마',포르투갈 '에스쿠도',아일랜드 '아일랜드 파운드',프랑스 · 벨기에 · 룩셈부르크의 각국별 '프랑'을 거쳐 영국에 돌아오니 60파운드가 남았다는 것이다. 유럽을 일주하니 환율과 각종 환전 수수료 탓에 40%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 일화는 단순히 관세만 철폐해선 제대로 된 단일시장이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단일 통화 없이는 단일시장이 비효율적이며 허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각국이 길게는 수천년에서 짧게는 수백년간 문화와 삶이 배어 있는 자국 통화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아시아의 부상으로 국제 무대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위상이 하락하면서 다른 대안은 없었다. 결국 오랜 세월 분열과 다양성에 기반했던 유럽은 효율성과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을 위해 하나의 통화인 유로로 합치는 결단을 단행했다.

2000년 3월 유로화가 영국을 제외한 EU 대부분 국가에 전면 도입되면서 국가별 화폐들은 유통이 정지되고,화폐 수집가들의 수집품목으로 전락됐다.

최고령 화폐인 그리스 '드라크마'는 최후의 숨을 내쉬었고,라인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독일 경제의 상징 '마르크화'도 역사속으로 퇴장했다. 오스트리아 실링과 핀란드 마르카도 더이상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