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친자식이 이복자식만 못하거나 소극적이다. 남편을 빼앗긴 것도 분한데 자식마저 뒤처지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도 망설일 일도 없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인간적 처사도 서슴지 않는다. 무섭고 모진 건 기본이요,불법과 악행도 마구 저지른다.
국내 TV드라마가 그려내는,이른바 '성공한 엄마'의 부정적 모습이다. 예는 수두룩하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하얀 거짓말'의 신정옥은 여공 출신 백화점 회장.둘째를 임신한 채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돈을 벌었다. 더없이 냉철하지만 자폐아인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며느리로 맞이하고자 그 집안을 망하게 할 정도다.
'카인과 아벨'의 나혜주는 간호사 출신 병원 부원장.남편 친구가 죽은 뒤 데려다 키운 아이를 남편 아들로 오인,제거하려 든다.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는 메이크업 전문가. 혼외자인 아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겠다며 친구 남편을 유혹한다.
'멈출 수 없어'의 임봉자는 섬유회사 사장.남편이 부도 난 회사를 남기고 죽자 공장 여공을 자동차로 치어 임금 대신 줬던 땅문서를 빼앗아 회사를 일구곤 사실을 알게 된 아들에게 "아픈 너를 살리기 위해서"였다며 울부짖는다. '아내가 돌아왔다'의 박여사는 건설사 사장 출신 갤러리 대표.아들을 출세시키겠다며 아픈 손주를 놓고 며느리와 거래한다.
일로 성공한 여성,특히 이렇다 할 배경 없이 혼자 힘으로 일어선 여성은 끔찍하게 독하다는 식이다. 여성적이지 못한 건 물론 부드럽지 못해 남자에게 내쳐졌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악당에게도 이유와 변명이 필요하다 여기는 걸까. 영화 '마더'의 영향이 작용한 걸까. 이들의 그악스러움과 악행은 한결같이 '자식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마더'에서와 달리 드라마에선 그토록 위해 바친 자식이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환멸을 느끼고 반발하는 수가 많지만.
'마더' 속 엄마 같은 엄마도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자식 키워 본 사람은 다 안다. 남에게 못할 짓을 하고 내 자식 잘되기를 바랄 순 없다는 걸.엄마가 되면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원한이 제아무리 커도 복수는커녕 그 험한 기운이 허공을 돌고 돌다 행여 내 자식을 해칠까 독하고 모진 마음을 접고 용서하려 애쓴다는 것을.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니 어떤 보복도 내가 당하는 건 괜찮지만 행여 자식이 당할까 두려워 들었던 칼도 내려놓는다는 걸.일단 가족이 된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것도 모자라 납치하고 협박하고 해치면서 죄다 자식을 위해서라고 얘기하는 건 일하는 엄마는 물론 세상 모든 엄마를 욕보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TV드라마를 놓고 뭘 그렇게 과대 해석하느냐' 내지 '과잉 반응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TV극의 주시청층은 여성이다. 일하는 엄마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렵다,성공지향적 여성은 사랑받지 못한다,자식은 인생의 걸림돌이다 같은 잘못된 인식을 심을 수 있다.
아이는 셋째에겐 대입 때 특혜를 준다는,도저히 키울 길이 없어 하나만 낳은 이들의 가슴에 대못 박는 방안을 내놓는다고 낳는 게 아니다. 누가 뭐래도 아이는 여성이 낳고 싶고 낳을 수 있어야 낳는다. 공중파방송에서 성공맘은 지독하고 징그럽다는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고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는 한 출산율 제고는 불가능하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