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의 글로벌화'를 기치로 내건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문산연)이 지난달 28일 창립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영화제작가협회,드라마제작사협회,뮤지컬협회,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예제작자협회,광고모델업자협회,게임산업협회,영화인회의 등 8개 관련 단체가 문화산업 발전계획을 공동 추진해 콘텐츠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다. 문산연의 초대 회장을 맡은 신현택 삼화네트웍스 회장(64)을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문산연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협회가 각자 활동하다 보니 산업 기반을 닦는 데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대중문화를 산업화의 길로 제대로 이끌려면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죠.게임 · 드라마 · 음반 · 방송 · 영화 · 모델 · 매니지먼트 등 대중문화 전 분야의 협회들이 다 들어왔어요. 각자 문제점을 토론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자는 얘기지요. 단체들은 대부분 힘을 과시해 뭔가 얻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발전 방안을 논의해 정부에 적절한 정책을 제안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콘텐츠산업을 21세기 성장동력으로 지정한 만큼 지원 의지가 있다고 봅니다. "

대중문화계가 정부에 바라는 지원이 구체적으로 뭔가요.

"한마디로 말해 문화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지정해 인프라를 구축해 달라는 것입니다. 대중문화는 수출액이 그대로 수익이 되는,외화가득률이 매우 높은 상품입니다. 자동차나 IT(정보기술) 못지 않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요.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데도 효과적이고요. 한국의 5000만 인구가 아니라 연소득 1만달러 이상의 아시아 5억 인구를 겨냥한 작품을 제작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파이가 커질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하드웨어 부문만 기간산업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

대중문화 장르별 관심사가 다르거나 견해차가 클 수도 있습니다.

"사실 방송만 해도 드라마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 간에 이견이 큽니다. 드라마 제작사들은 출연료가 비싸다고 하고 매니지먼트사는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맞섭니다. 그러나 제작사들이 배우들의 비싼 개런티로 인해 망해가고 그게 매니지먼트 업계에 부메랑으로 돌아간다는 상황을 얘기하면 의견이 좁혀집니다. 결국 공동의 문제란 것이지요. "

한류 붐에도 불구하고 제작사는 돈을 못벌고,외자 유치도 어렵습니다.

"한류가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제작사 입장에서 보면 배우의 개런티만 올려놨습니다. 대부분 제작사는 적자예요. 전부 거지 인생을 삽니다. 외자 유치가 안 되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도 자성하고 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만 일하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됐어요. CJ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하곤 해외 유통망을 가진 업체도 없어요.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얘기지요. 문산연이 그 역할을 맡겠습니다. 장르가 달라도 투자창구는 동일합니다. 문산연이 파워를 키우면 태국 같은 나라에서도 투자를 끌어올 수 있습니다. "

태국이 한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 투자할 여력이 있나요.

"태국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부자예요. 슈퍼주니어가 한 차례 공연하면 45만달러의 입장 수입을 올립니다. 레코드 회사는 20층짜리 빌딩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킬러콘텐츠가 없어서 한국으로 옵니다. 그게 우리의 힘입니다. 하지만 태국이나 중국도 최근 드라마 부문에서 우리 제작 방식을 벤치마킹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습니다.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한국을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

한국이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을 아시아의 제작 중심지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작 능력은 한국이 앞선다고 외국에서도 인정합니다. 해외 자본을 유치해 한국에서 제작하고,그들의 유통망을 활용해 세계 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일례로 일본은 작가군이나 마케팅 능력에서 한국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양국의 강점을 결합한 '텔레시네마'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일본의 유명 작가가 대본을 쓰고 한국 1급 배우와 감독이 연출을 맡은 드라마 7편을 만들어 이달 초부터 극장과 TV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삼화네트웍스가 편당 10억원 정도 제작비를 투입했는데 일본에 사전 판매해 제작비의 35%를 회수한 상태예요. 일본에서는 도에이가 내년 1월부터 극장에서 상영합니다. 다음에는 대만의 톱 작가가 대본을 쓰고 대만 업체가 투자까지 맡게 하고 한국에서 제작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런 합작 프로젝트는 인터넷으로 금세 알려지기 때문에 별도로 마케팅할 필요조차 없어요. "

대부분 드라마 제작사가 적자인데 삼화네트웍스는 흑자기업으로 유명합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드라마를 제작할 때 경제 규모(제작비)에 맞춰 예산을 편성합니다. 배우 출연료는 30% 내에서 해결합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로 촬영 일수를 줄여 출연료와 인건비를 낮춥니다. 드라마 제작사들이 적자인 이유는 방송사가 1억원을 주는데 2억원짜리 예산을 편성해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죠.대박만 좇지 실패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프로듀서가 연출자를 통제하지 못하고 작품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니까 제작비가 올라갑니다. 한마디로 CEO 마인드가 부족한 거죠."

인기 방송작가 김수현씨가 삼화네트웍스 이사로서 회장님과 오랜 콤비를 이루고 있다면서요.

"삼화의 일등 공신은 김수현 작가라고 할 수 있지요.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 등 10편 정도를 저와 함께 작업해 성공시켰어요. 3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오면서 일을 떠나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가 됐어요. 농담 삼아 '일 관련 와이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김 작가의 대본처럼 뛰어나면 스타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할 필요가 없지요. 김 작가는 매사에 철두철미해요. 그래서 까다롭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는 정말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

내년에는 종합편성 채널이 첫 인가되는 등 방송환경이 급변할 전망입니다. 대중문화 업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로선 고무적인 현상으로 환영합니다. 지상파 독점체제가 무너지고 대중문화의 산업화를 앞당길 것입니다. 제작사들이 적자에 빠진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가 '대박'을 거두더라도 지상파들이 판권 소유와 광고 영업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독점 구조 때문입니다. 종편이 2개 늘어나 종합채널이 5개로 늘면 방송사들이 경쟁 체제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면 고용 창출 효과가 커지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을 거예요. 물론 종사자 인건비와 콘텐츠 가격이 오르는 역효과도 예상되지만 이는 미리 제재하면 됩니다. 종편 설립을 두고 일부 정치인들이 '정보 독과점' 운운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가요. 종편이 5개로 늘면 산업화로 가지,어떻게 독과점으로 갑니까? 문화산업은 평등원칙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경쟁의 원리 속에 스필버그 같은 천재들이 이끌어가는 분야예요. "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