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됐나?" 전투복과 전투화를 신은 채 수영장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사관생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교관이 레버를 당기자 소나기가 내리듯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조용하던 수영장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로 돌변했다.

생도들은 재빨리 전투화를 벗고 전투복 하의를 벗은 다음 바짓단을 묶어 힘껏 수면에 내리쳤다. 바지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 튜브처럼 부풀어 올랐다. 생도들은 바지 튜브에 몸을 의지해 물 밖으로 헤엄쳐 빠져나왔다. 스티븐 스토킬로 미국 육군사관학교 체력담당관은 "전투 중 불의의 사고로 조난을 당할 경우에 대비한 생존훈련(combat survival)"이라고 설명했다.



전투 중 생존력은 창의성 훈련에서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뉴욕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웨스트포인트의 허드슨강 하류에 있다. 18세기 후반 미국인들은 대서양을 건너 진격해 오는 영국군을 이곳에서 맞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했다. 독립전쟁의 역사가 서려 있는 이곳에 미국은 국가안보를 책임질 엘리트 군 장교의 산실을 만들었다.

미 육사는 최근 미국의 격주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09년 미국 최고 대학'에서 1위를 차지해 이목을 끌었다. 군사교육 외에도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45개의 전공 과정을 함께 교육하고 있고 각종 장학 제도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육사의 강점이다. 브랜트 매튜 국제화 교육 담당 학장은 "지식과 체력,덕성을 두루 갖춘 군 지휘관을 양성하기 위해 군사교육과 기초 학문이 조화를 이룬 전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장교를 길러내는 곳인 만큼 미 육사의 모든 교육과정은 '컴뱃 서바이벌(combat survival)'에서 보듯 전투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된다. 이 교육에서 미 육사가 가장 강조하는 점은 생도들의 창의성 향상.

일반적으로 군대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조직으로 인식된다. 상관이 명령하면 부하는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육사는 그 어느 곳보다 창의성이 필요한 곳이 군대,특히 전투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매튜 학장은 "전투 중의 군인은 종이 한 장을 던져주면서 교량을 건설하라고 해야 한다"며 "우리는 생도들에게 목표만 줄 뿐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전적으로 생도들의 창의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미 육사가 생도들에게 어린이 놀이지도 훈련을 시키는 것도 창의성을 길러주는 데 목적이 있다. 초등학교에 가서 수업 계획을 세우고 직접 지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의력이 떨어지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혼란스러운 전투 현장에서 부하들을 통솔하고 조직을 이끌어가는 방법을 배우라는 취지다.

글로벌리티를 키운다

미 육사 생도에게는 여름방학이 따로 없다. 매년 여름에는 세계 각지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 육군으로 파견돼 인턴십을 수행한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해 보는 것과 함께 글로벌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다. 미국은 전 세계 26개국에 30만명이 넘는 병력을 파견하고 있다. 대규모 부대가 아닌 연락장교 형태의 파견까지 포함하면 파견 규모는 더 커진다. 따라서 미 육사 생도에게 외국에 대한 경험과 글로벌 감각은 필수라고 육사 측은 강조했다.

미 육사는 매년 여름학기마다 40여개국에 생도들을 내보낸다. 올여름에도 전체 4500명의 생도 중 1120명이 해외 미군 부대에 파견됐다가 돌아왔다. 매튜 학장은 "미군 장교 중에는 러시아 전문가와 중국 전문가는 물론 아랍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아프리카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며 "육사는 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도들의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은 미군 부대 인턴십만이 아니다. 150명의 생도는 1년간의 코스로 12개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나가 현지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환경보호단체를 비롯한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운동에 취미가 있는 생도는 해외 축구팀이나 야구팀에서 생활하다 오는 것도 가능하다. 또 미 육사에서는 전 세계 30개국의 사관학교에서 온 60여명의 생도가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현역 장교(교수)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도 생도들에겐 큰 자산이 된다.

겸손과 희생의 리더십을 배운다

미 육사 생도들은 4년의 교육기간 중 누구나 한번은 리더를 경험한다. 생도 128명이 1개 중대로 편성돼 생활하는데 2학년 때부터는 1학년의 교육훈련 과정을 챙기고 평가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고 4학년이 되면 돌아가면서 중대장 생도 임무를 수행한다.

리더십 교육 과정에서 미 육사가 강조하는 것은 겸손과 희생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서 군대와 같은 규율 속에 교육을 하기 때문에 우선 겸손과 희생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그 가드 교수(소령)는 "생도들 중 거의 절반이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거나 운동부 주장 출신"이라며 "이들에게 개인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웨스트포인트(미국)=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