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임명한 닐 바로프스키 특별감사관이 지난 21일 제출한 보고서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역설을 단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전임 부시 행정부의 7000억달러 금융권 구제금융(TARP) 자금 집행을 감사한 인물이다. 바로프스키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위기를 초래한 당사자인 대형 부실 금융회사들에 대규모 세금을 투입했지만 시장의 행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로 파산을 면할 수 있었던 대형 금융사들은 오히려 덩치가 더 커진 상태"라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그동안 정부와 금융계에 만연한 대마불사 관행의 종식을 고하는 해법을 수일 내 내놓는다. 하원 재무위원회는 입법 초안을 다음 주 중 표결에 부칠 것으로 예상된다. 해법으로는 △대형 부실 금융사의 경영진 교체 △주주와 채권자의 손실 부담 △기존 부채 규모 조정 △자본 확충 강화 등이 거론된다. 적용 대상은 은행지주회사,증권 모회사,보험사,선물거래업체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대마불사는 위기에 급한 불부터 꺼놓고 보자는 정책적 인식이 팽배했기에 가능했다. 덩치가 너무 커 방치하면 전체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어 불가피하게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관행을 등에 업고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등 9개 대형 금융사는 지난해 구제금융을 최우선적으로 투입받았다. 미 최대 보험사인 AIG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연명했다.

하지만 대마불사를 계속 용인할 경우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지배하게 됐다. 대마불사는 대형 금융사에 무모하고 위험한 투자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최근 골드만삭스 등 월가 금융사가 다시 대규모 보너스 잔치를 벌이기로 한 것은 위기 이전으로 회귀하는 행태로 지적된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26일 "금융사를 향한 미국인들의 분노를 이해할 만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셰일라 베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대마불사 관행을 이제 종식시킬 때가 됐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로펌인 브라이언 케이브의 월터 모얼링 파트너 변호사는 "지난 수십년간 대마불사의 문제점이 지적됐으나 정면으로 다루지는 못했다"면서 제2의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대마불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일관성 없이 허둥된 것도 대마불사 해법을 내놓는 주요 배경이다. AIG와 BOA는 회생시킨 반면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켜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부실한 대형 금융사를 '질서 있고 신속하게' 정리 및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정부에 필요하다고 의회 청문회에서 밝혔다. 행정부의 시각도 버냉키 의장과 같다.

대마불사 관행을 척결하자는 강경파들은 한술 더 떠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주기 전에 부실 금융사를 해체하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행정부와 FRB는 "제안이라기보다 너무 도발적인 주장"이라며 과격한 공중분해 해법을 거부하고 있다. 하원 재무위의 입법 초안에는 대형 금융사를 정부가 접수해 관리하는 권한을 담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FDIC는 이 권한을 갖고 있으나 소형 은행에 국한되고 있다.

한편 유럽도 위험 사업부문을 잘라내는 공격적이고 선제적 조치의 대마불사 해법을 들고 나왔다. 유럽 최대 금융그룹 가운데 하나인 ING는 이날 감독당국인 유럽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2013년까지 순수한 은행 업무만 남기고 보험과 투자은행 부문을 매각,사업 규모를 45% 축소키로 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며 은행과 보험 겸업인 방카슈랑스 전략을 포기했다.

벨기엘 브뤼셀에 있는 법무법인 로벨의 자크 데른 파트너는 "이번 유럽위원회의 조치는 은행이 경쟁력을 잃지 않고 생존하기 위한 균형감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한 애널리스트도 "유럽위원회는 대마불사 문제를 이슈화하길 원했고,이에 따라 ING는 경영 가능한 수준의 크기로 다시 나뉘게 됐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