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관련 부품들의 해외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까지는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진 1차 부품의 수출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 와서는 새롭고 독자적인 기술력과 품질이 요구되는 고급 부품의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수출되고 있거나 공급계약을 맺은 부품들은 엔진에 탑재되는 주요 부품에서부터 자동차용 오디오와 전기자동차용 전지까지 다양하다.

이 부품들은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수의 자동차업체들로 공급되며 기술력과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모비스, LG화학 등 대기업에서부터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까지. 국내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들은 새로운 경쟁무대인 세계 자동차업계를 누비고 있다.

◆LG-삼성-SK 전지시장 3파전

전기자동차 시대가 다가오며 LG화학, 삼성SDI, SK에너지 등 국내 대기업들은 전기차에 탑재되는 전지 개발로 일제히 눈을 돌렸다.

선발주자인 LG화학은 올 초 미국 GM이 개발 중인 전기차 '시보레 볼트'에 탑재되는 전지의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볼트'는 가솔린, 디젤 등 기존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히 전기동력만으로 구동되는 전기차다.

LG화학은 이어 지난 8월에는 GM이 '뷰익' 브랜드로 개발 중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전기차 모델에 탑재되는 전지 공급계약을 맺으며 '선두주자'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PDP, LCD패널 등 디스플레이제품에 주력해온 삼성SDI는 지난 8월 독일 자동차부품업체인 보쉬와 전기차 전지개발 합작회사 'SB리모티브'를 설립했다. 총 투자규모는 5000억원에 달한다. 오는 2015년까지 전 세계 자동차용 전지 시장 점유율 30%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이 회사는 첫 납품 실적으로 독일 명차 BMW에 전지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내년부터 시제품용 리튬이온전지의 공급을 시작한다. 2013년부터는 2020년까지 8년에 걸쳐 BMW에 전지를 공급할 계획이다.

BMW는 내년에 하이브리드차를 국내에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수입되는 차의 핵심부품으로 한국산이 탑재되는 셈이다.

여기에 후발주자로 SK에너지가 자동차용 전지시장에 뛰어들며 이들 3사간의 치열한 경쟁구도가 펼쳐지는 양상이다.

SK에너지는 독일 다임러그룹에 하이브리드차용 전지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고 25일 밝혔다.

SK에너지는 다임러와 공동 개발 형식으로 향후 2년여간 다임러그룹 내 상용차업체인 미쯔비시 후소의 하이브리드차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SK에너지는 여기서 생산되는 하이브리드차에 장착되는 리튬이온전지를 공급한다.

업계 관계자는 "SK에너지는 국내,일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이번 공급계약을 따냈다"며 "전지시장을 둘러싼 업체들 간의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산 부품으로 보고 듣는다

해외로 수출되는 국산 자동차 부품은 전지 등 동력계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운전자들이 주행 중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집중하게 되는 내비게이션의 LCD패널이나 카오디오도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유럽 최대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 그룹과 오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3억7000만달러 규모의 카오디오 시스템 납품계약을 체결했다고 25일 밝혔다.

LG전자가 수출하는 카오디오는 독일 폭스바겐 브랜드를 포함, 스페인의 ‘시트’, 체코 ‘스코다’ 등 폭스바겐 그룹의 3개 자회사가 공동개발해 2012년 출시예정인 신차에 탑재된다.

이 제품에는 차량 내 각종 전자제어장치(ECU) 정보를 표시해주고, 스피커, 안테나 등 카오디오 관련 외장 기기들의 자가진단 기능을 지원한다. 또 블루투스, USB 포트와 SD카드 슬롯을 장착해 외부 기기들과 쉽게 연결할 수 있는 등 첨단 기능을 접목시켰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7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대표모델인 세단 'E클래스'에 장착되는 내비게이션용 LCD패널 공급을 체결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LCD패널은 일본 전기전자업체 산요를 통해 미국 GM에서 내놓는 고급형 세단에도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 LCD패널 시장에서 한 때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던 샤프 등 일본 업체를 제쳤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현대모비스도 독일 다임러그룹에 오디오와 지능형 배터리센서를 공급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약진'…기술력 인정받아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술력도 해외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울산지역 자동차부품 업체인 한주금속은 지난 18일 프랑스 르노의 신형 디젤엔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생산 제품의 해외 판매처 확보를 위해 지난 수년간 르노와 접촉해 온 끝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구매의향서(LOI)를 받았다.

이 회사는 르노가 새로 개발하는 디젤엔진의 실린더 헤드에 장착되는 주요 부품을 공급하게 된다.

공급액은 200만~300만달러정도.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대규모 해외 수출을 노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이 회사의 자체적인 평가다.

전기장비업체 크로바하이텍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전원공급부품인 트랜스포머와 코일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급을 예상하고 있다.

직원 수가 60여명에 불과한 중소 부품업체 삼화텍은 자동차용 에어컨 컴프레서 등을 GM, 포드 등에 공급하고 있다.

중견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푸조 시트로앵과 제동장치(브레이크) 납품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산 부품 왜 잘 팔리나?

이처럼 해외 자동차 메이커들이 국산 부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일본과 더불어 한국 기업들이 전기.전자제품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엔고원저' 현상도 한국산 부품들의 시장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박영호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럽계 완성차 업체들은 품질이 보증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국내 부품업체들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지난 9월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의 수출액은 올 들어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자동차 부품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해외 수출액은 모두 12억3000만달러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전망도 밝아 보인다.

최대식 하이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내년 7월 정식으로 발효될 예정인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유럽지역 수출 비중이 큰 국내 자동차 부품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은 한국산 자동차부품들은 협정체결에 따른 관세 인하가 가격인하 효과로 이어지며 시장 경쟁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