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목원이라 기대를 했는데 꽃도 별로 없고,실망이다. " 수목원을 구경하고 나가는 사람들로부터 가끔 듣는 이야기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 꽃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습지원,수생식물원,약용식물원 등 전시원은 말할 것도 없지만 수십m 높이의 전나무와 갈참나무 등이 우거진 숲 속 역시 들꽃들의 세상이다.

숲속으로 오솔길처럼 나 있는 생태관찰로 입구부근의 몇 m만 보자.며느리밥풀이 붉은 아랫입술에 밥알을 올려놓은 듯 흰점 2개를 달고 시어머니의 오해와 구박으로 죽게 된 억울함과 한을 풀어내며 들어보란다.

이슬보다 더 고운 털이슬이 꽃을 막 떨어뜨린 자리에 열매를 달고,2개 잎이 모여 난 모습이 나비를 닮았다 해서 이름 지어진 나비나물이 연보라색 꽃을 치렁거리고 있다. 이삭길이가 20~30㎝인 이삭여뀌가 빨간 열매와 함께 흰 바탕에 분홍빛을 띤 꽃을 뽐내고,그것을 시기라도 하는 듯 흰 꽃과 흰색에 가까운 열매를 단 가시여뀌가 가끔 가시로 찔러본다. 큰 도둑놈의갈고리는 몇 개의 보라색 꽃으로 줄기 끝을 치장한 채 안경과 비슷한 수십 개의 열매로 무엇 훔칠 것 없나 두리번거린다. 그 밖에도 산박하,참나물,멸가치 등이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라나 서로를 배려하면서 함께 놀고 있다.

그럼 이렇게 많은 꽃들이 피어 있는데 왜 꽃이 없다고 할까. 그건 첫째 이들 꽃은 대부분 크기가 1㎝도 안 되게 작고 화려하지 않으며,일상생활에서 가까이 할 기회가 적은 야생화들이다. 그래서 특별히 풀과 나무를 공부한 적이 없는 일반인은 이들 꽃을 잘 알지 못해 옆에 놓고도 쉽게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공적으로 화려한 꽃을 가꾸는 사설식물원과 달리,국립수목원은 다양한 생물종을 보존하며 이들을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되도록 숲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것을 우선하기 때문에 화려한 원예종의 꽃들이 많지 않아서다.

셋째는 들꽃은 허리를 굽히고 낮은 자세로 찬찬히 감상할 필요가 있는데 별 관심 없이 대충대충 보려는 꽃의 감상태도라고 본다.

아무튼 일부 관람객의 실망과는 딴판으로 땅 위에 내린 '신의 정원'이라는 광릉 숲,특히 그곳의 중심에 자리한 국립수목원에는 한창 익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수많은 다양한 들꽃들이 어울려 신나게 놀며 축제를 벌이고 있다.

유기열 국립수목원 해설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