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치 급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 자국 통화 절상을 막기 위한 전투에 돌입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 가치 하락 기조가 뚜렷한 가운데 약달러 가속화를 방치했다간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외환보유액 자산가치의 상당 부분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 한국과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주요국들이 자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의 급락세를 제어하기 위해 일제히 시장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각국 정부는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진 않고 있지만 일선 외환 트레이더들 사이에선 이미 공론화된 사실이라고 WSJ는 전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최근 3개월간 달러 대비 1.8% 뛴 바트화의 절상 속도 조절을 위해 강도 높은 개입에 들어갔으며,필리핀 중앙은행은 환율 조정을 위해 1억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중앙은행도 달러당 1.4020싱가포르달러 선을 마지노선으로 삼고 달러 사재기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도 최근 1년간 위안화 환율을 달러당 6.82~6.83위안에서 사실상 고정시키고 있다. 2005년 고정환율제에서 관리형 변동환율제로 돌아선 이후 3년간 21% 절상시켰지만 수출이 영향을 받으면서 절상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반면 정권 교체 후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온 일본 정부는 다른 아시아지역 나라들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은 이날 WSJ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비정상적으로 무모하게 진행될 경우엔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현재는 아주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달러화는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88.80엔을 기록하며 지난달 말 이후 또다시 88엔 선에 진입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장중 달러당 88.08엔을 기록, 8개월 반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찬밥 신세로 전락한 달러화의 위상은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나타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9월 말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화별 구성보고서(COFER)'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세계 140개국의 외환보유액 4조2700억달러 중 달러 점유율은 62.8%(2조6800억달러)로 전 분기 대비 2.2%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1999년 1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유로화의 경우 27.5%(1조1700억달러)로 1분기에 비해 1.6%포인트 상승했다.

달러 약세가 심화되는 가운데 금값이 사상 최고치로 뛰어오르는 등 원자재 가격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6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은 장중 사상 최고치인 온스당 1045달러까지 치솟은 뒤 전날보다 21.90달러(2.2%) 오른 1039.70달러에 마감,지난해 3월의 기록(1033.90달러)을 경신했다. 구리도 재고 증가에도 불구하고 급등했다. 런던선물거래소(LME)에서 구리 3개월물은 196달러(3.3%) 상승한 t당 6116달러에 거래됐다.

이미아/서기열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