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예금ㆍ채권ㆍ직접투자 '기웃'…단기부동화 가속

시중 자금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주식에서 예금으로, 또는 예금에서 주식으로 '뭉칫돈'이 특정 방향으로 옮겨갔던 기존의 '머니무브'와는 다르다.

돈이 빠지는 곳은 뚜렷하지만 유입되는 곳은 딱히 특정하기 어렵다.

코스피지수가 1,700 안팎으로 오르면서 주식펀드 환매가 본격화한 것이 시발점이다.

부동산 시장이 일시적으로 주춤해진 가운데 펀드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예금이나 우량채권 등으로 각개약진하는 상황이다.

대부분 길어야 6개월 이내인 단기성 투자다.

자금시장이 혼전 양상을 보이면서 단기부동화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 펀드 뭉칫돈 '우르르~'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7일까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1조4천163억원이 순유출됐다.

1조1천274억원이 새로 설정됐지만, 해지 금액이 2조5천437억원에 달했다.

특히 17일에는 4천억원이 빠져나갔다.

이런 추세라면 9월 국내 주식형펀드 순유출은 2조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월별로는 코스피지수가 1,400대로 치솟았던 5월 9천677억원이 순유출된 뒤 6월에는 704억원으로 그 규모가 줄었지만 7월 9천634억원, 8월 1조6천323억원으로 다시 급증세다.

그밖에 해외 주식형 펀드, 혼합형 펀드, 파생상품 등에서도 자금 유출이 지속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급등하면서 어느 정도 원금을 회복한 투자자들이 대거 현금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창수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센터 PB팀장은 "지수가 예전 수준을 회복한 상황에서 심리적 안도감에 따른 '안도형 환매'"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머니마켓펀드(MMF)의 '자금 엑서더스'는 이달 들어 주춤한 양상이다.

1~17일 25조9천893억원이 설정되고 25조6천916억원이 해지되면서 소폭 순유입세를 보이고 있다.

MMF 자금은 지난 6월 무려 13조1천384억원이 순유출됐고, 지난달에도 6조6천443억원이 빠졌다.

◇ "갈 곳이 없다"…자금시장 혼전
'뭉칫돈'은 어디로 갔을까.

일단은 은행 예금으로 유입됐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1~15일 예금은행의 실세총예금은 3조1천824억원 증가했다.

월중 변동성이 큰 실세요구불이 1조1천800억원 줄었지만 저축성예금은 4조3천624억원이 늘었다.

지난달에도 은행 정기예금이 4조1천억원, 수시입출식예금이 13조5천억원 각각 급증했다.

작년 9~10월 연 6%대 금리로 가입한 정기예금이 만기를 앞두고 있어 은행권이 예금금리를 최대한 인상하면서 자금을 흡수했다는 분석이다.

금리인상 가능성에도 채권형 펀드로 자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국내 채권형펀드로는 이달 들어 17일까지 6천239억원이 순유입됐다.

채권수익률이 4%대로 2%대 초반에 물과한 MMF에 비해 높은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시에 직접 투자하려는 수요도 있다.

실질적 주식매수 자금을 보여주는 실질고객예탁금(고객예탁금+개인순매수액-미수금-신용잔고)은 16일 기준 9조7천240억원으로 전월말보다 5천억원가량이 늘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크게 부각되는 투자처는 없지만 단기성 예금이나 직접투자, 부동산 등으로 제각각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 단기부동화 가속
주식펀드에서 유출된 자금이 예금이나 채권펀드 등으로 유입되고 있지만 대부분 단기성 자금이다.

우선 펀드를 환매했지만 마땅히 묻어둘 곳이 없다보니 조금이라도 금리가 높은 상품을 찾아 자금이 빠르게 회전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은행수신 증가세는 수시입출식예금이 주도했다.

정기예금으로 몰리는 자금도 3~6개월, 심지어 1개월짜리 투자자금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이르면 연말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1년짜리 예금에 묻어둘 투자자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까지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던 부동산 시장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로 주춤해지면서 이러한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재테크팀장은 "지금 움직이는 자금은 모두 단기성"이라며 "단기 우량채권이나 기업어음(CP), 주가연계증권(ELS) 등 틈새 상품에도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달러 캐리트레이드'라는 큰 흐름이 있지만, 국내에는 뚜렷한 자금이동을 만들 만한 모멘텀이 없다"며 "결국 일시적으로 자금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