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패닉은 끝났고 시장은 안정화돼 가고 있습니다. 아직 금융시스템을 개혁할 만큼의 여유는 없다지만 개혁은 이른 시일 내에 꼭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은 정부 개입 외에 금융혁신과 구조조정 같은 다른 시장 중심의 솔루션들을 찾아야할 시기입니다.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18일 서울대 법대 백주년기념관 주산기념홀에서 열린 '미국의 경기침체'(The Current U.S.Recession)라는 주제의 특별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부 개입이 작년 말 불거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 궁극적인 효과를 단언할 수는 없다며 시장의 원활한 조정 기능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경제, 패닉 끝났지만 불확실성 상존

루커스 교수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의 소비 감소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금융시장의 패닉은 2008년 말에 이미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많은 전문가들은 기업 실적의 턴어라운드를 점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루커스 교수는 시장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시카고학파의 수장답게 지난해 말 불거진 경제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정부의 재정정책이 과연 정말 필요했고,유용했는지 조심스럽게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재정정책은 정부 부채와 세금을 증가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그 장기적인 효과를 확실히 단언할 수 있는 '안심 단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작년 말의 경기침체는 전쟁 이후의 불황과 비슷하게 시작됐지만 최근 60년간 그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하게 진행됐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투자 리스크 간과가 금융위기의 원인

미국은 대공항 이후 1933년 '글래스 스티걸 법'(Glass-Steagal Act)이 만들어지면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명확하게 구분됐다. 투자은행과 달리 안전한 '지급보증 요구불 예금'을 취급하는 상업은행에는 지불준비금 등의 정부 규제가 가해졌다.

루커스 교수는 이 구분 체계가 흔들린 것이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던 1970년대 금리가 오르면서 사람들은 좀 더 많은 이자를 주는 투자은행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그러나 투자은행의 금융상품도 상업은행과 똑같이 지급불능 리스크가 없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미국 주택시장 침체가 시작되면서 커진 모기지론의 부실화는 이런 환상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뱅크 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베어스턴스나 리먼 브러더스 같은 '대어'들이 신용경색에 직면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루커스 교수는 "이제 너도나도 안전한 상품만 찾으려고 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으려고 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위험한 투자상품과 안전한 상품을 명확히 구분하고 또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개입 외에 시장 기능 활성화시켜야

루커스 교수는 유동성 위기에 따른 소비 감소는 뚜렷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가져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처럼 부동산 같은 안전자산에 자금이 너무 쏠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부 규제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루커스 교수는 "만약 정부가 이런 '쏠림 현상'까지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시장에 잘못된 인식을 주는 것"이라며 "이제 시장의 기능을 좀 더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부 규제나 감독 외에 친시장적인 접근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는 "지금 필요한 유동성과 안전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들에게 리스크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며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자생력이 없는 은행을 퇴출시키는 등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서욱진/김병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