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3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보여 파장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파생상품에 투자해 큰 손실을 본 것과 관련한 징계 안건 심의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황 회장이 투자 부실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보고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황 회장에게 이미 통보한 상태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예고대로 징계가 이날 중 확정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감독당국이 은행장급 인사에 대해 직무정지 수준의 징계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징계 적절성 여부와 수위를 놓고 논란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 중징계 왜?
금감원은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 관련 법 규정을 어겼다고 보고 있다.

무리한 파생상품 투자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것은 물론이고 투자 과정에서 위험 관리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통해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황 회장이 CDO와 CDS 투자를 직접 지시했다"며 "이번 징계는 금융기관 임원이 해당 회사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제재할 수 있다는 은행법 54조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CDO와 CDS에 15억8천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1조6천200억 원을 손실처리했다.

황 회장 재임 때 이뤄진 투자로 입은 손실은 1조1천800억 원이다.

금감원은 또 만기가 긴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면서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징계 안건은 내주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제재심의위의 결정이 금융위에서 번복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무정지 제재가 확정되면 본인에게 통보된 날로부터 4년간 금융회사 임원선임에 제한을 받는다.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다음 주중 예보위원회를 열어 우리금융이 작년 4분기에 경영이행약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징계를 확정할 예정이다.

예보의 징계는 `주의, 경고, 직무정지, 해임' 등 4가지가 있으며 예보 역시 황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에 상당하는 징계를 내리는 쪽으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예금자의 돈을 빌려서 장사하는 은행이 수익이 높다는 이유로 리스크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고위험 상품을 샀으며, 사후관리도 하지 않아 큰 손실을 냈다는 점"이라며 "따라서 당시 최고경영자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징계 적절성 논란 계속될 듯
감독당국의 징계 결정에도 논란은 당분간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손실에 대해, 그것도 임기가 끝난 뒤 발생한 투자손실에 대해 최초의 투자 책임을 묻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때문에 투자 손실이 커진 것을 두고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는 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황 회장 측도 그동안 "`천재지변'에 가까운 금융위기로 발생한 유가증권 투자 손실은 감독당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또 황 회장 본인이 직접 파생상품 투자 지시를 내린 적이 없고 부행장 전결로 이뤄진 적법한 투자였으며, 본인의 재임 기간에는 손실이 나지 않았고 후임자가 손실을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는 논리를 펴왔다.

모 은행의 고위 임원은 "증권 투자로 손실이 났다고 처벌을 하게 되면 앞으로 금융회사의 CEO는 임기 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금융기관 인사는 "잘못이 있다면 그 시기가 언제이든 간에 시비를 가려 문책하는 것이 맞다"면서 "특히 자신이 최고경영자로 있던 조직이 그토록 큰 피해를 입었다면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리"라고 주장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금융회사의 경영자는 주주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예금 고객에 대한 의무를 고려해 매우 신중한 의사 결정을 할 것을 요구받는다"며 "황 회장은 재임 기간 파생상품 투자 이외에 무리한 규모 확장 전략을 추구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은행의 심각한 부실채권 부담으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 측은 금융위의 최종결론이 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법적 대응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감독원과 예보로부터 잇달아 중징계를 받게 된 황 회장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서 사퇴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감독당국도 공적자금 투입기관에 대한 감독 소홀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경영진 몸사리기 확산' 우려
금융업계에서는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계기로 앞으로 금융회사 최고 경영자들이 소신 있는 경영활동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2~3년 전 재임 때 결정한 투자에 대해 사후 책임을 물어 중징계하면 CEO들이 인수합병(M&A), 구조조정, 해외시장 개척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해 소신 있는 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금융업계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업계 판 `변양호 신드롬'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신드롬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담당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의혹으로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선 이후 관가에서 구조조정의 총대 메기를 꺼린 현상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황 회장 징계 이후 금융업계 최고경영진 사이에 책임 회피 풍토가 만연해지면서 금융산업 발전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금융은 세계적인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약 3억 달러의 투자를 검토했으나 이를 최근 보류했다.

이는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채권 투자에 따른 손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최현석 김호준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