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제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의 《이공계 연구실 이야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토끼와 거북이론'이다. 토끼에 비해 신체적으로 열등하고 걸음도 느린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거북이는 걸어서 절대로 토끼를 이길 수 없으니 언덕을 내려갈 때는 온몸으로 굴러야 한다. 즉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고,안 되면 연구시간이라도 늘리는 등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첨단과학 기술을 이용한다. 유전공학 기술로 거북이 다리를 조작하거나 내비게이터를 이용해 토끼를 앞지르는 것이다. 그러자면 선진국이 갖고 있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첨단기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융합기술,인문 · 사회과학적 소양,발표력 등 기초체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풍토,자유로운 연구환경 등이 조성돼야 한다.

셋째,달리기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북이가 잘하는 게임을 한다. 토끼와 수영경기를 하면 거북이가 이길 수 있듯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개발하고 정부가 집중 투자한 결과 우리나라가 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에서 성과를 올린 것처럼 자신이 흥미있는 연구 분야를 택한다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넷째,장기전을 펼친다. 토끼는 수명이 짧은 점을 이용해 단시간에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10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경기를 하는 것이다. 기초학문의 경우 단시간에 결실을 얻기 힘들다. 하나의 주제를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획기적인 기술도 탄생할 수 있다. 학문적 유행과 연구비를 좇아 수시로 연구 주제를 바꿔야 하는 현실에 비춰 볼 때,노벨상급 연구자가 나오지 않는 현실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전폭적인 정부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론'은 우리나라 과학 연구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미래의 그림까지 펼쳐보이는 우화다. 동료 교수들의 사례를 보자.

면역학과 장기이식을 연구하는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가 환자를 열심히 보면 됐지,연구는 무슨 연구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며 '베드(병상)'에서 '벤치(실험대)'로 옮겨 간 경험담을 털어놨다. 안 교수는 내과 전공의 4년차에 국내에서는 증명된 적이 없었던 렙토스피라병에 걸린 환자를 진단하지 못해 속수무책이었던 일을 소개한다. 그의 스승이 당시 미수교국이던 중국에서 관련 문헌을 '밀수'하다시피 얻어왔고 교실 막내였던 그가 학교 앞 중국집에서 번역했다. 1년 뒤 렙토스피라병 치료제가 태연히 투여되는 병실을 보면서 그는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지식의 답습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연구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나노세공 물질 합성에 관한 '정말 간단한' 아이디어로 8년간 최고 권위의 저널에 논문을 20편 이상 발표할 수 있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엉뚱한 생각으로 창의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연구를 잘하기 위한 방법'과 연구의 기쁨을 느끼고 팀워크를 중시하라는 조언으로 이어진다.

'연구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수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벤처 창업을 할 수도 있고,또 벤처회사가 잘되면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연구는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비록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사회적 유명 인사가 되지 않더라도 연구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연구 결과는 인류의 지식재산이며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된다. 나를 위하여 살되,인간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연구자의 보람이요,최고의 인센티브일 것이다. '

공학 교육에 관한 충고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정부가 여기저기 돈 쓸 곳이 많아 공학 교육에 과감히 투자하지 못한다면 청소년 시기에 '공학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간단한 일로 공학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 '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