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최악의 침체를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회복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

세계의 이목이 쏠린 '잭슨홀 회의'에서 21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신중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냉키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각국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고 있다"며 "조만간 세계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경기전망을 반영하듯 다우지수는 장중 한때 9500선을 돌파하는 등 상승 출발했고 유가는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버냉키 의장은 그러나 "늘어나는 실업률과 불안한 금융시장 등 여전히 위험요인이 남아 있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최근 몇 달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올 2분기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이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는 등 세계 경제의 'V자형' 회복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완전한 회복을 이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금융시스템이 여전히 정부지원에 의존하고 있고 은행 역시 대출에 소극적이란 점을 들어 이 같은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독일 분데스방크의 악셀베버 총재도 최근 독일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회복세가 지속적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지난 11~12일 열렸던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위원들은 경제활동이 안정되고 있다면서도 성장 전망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버냉키 의장은 최대 관심사로 꼽힌 금리인상 시기 등 출구전략에 관해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앙은행들이 한편으론 기준금리를 성급히 올리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시장에 주길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경기회복 신호에 유연하게 대응하길 원한다며 정책적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미 서부 와이오밍주의 작은 휴양도시인 잭슨홀에서 매년 열리는 이번 회의는 FRB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버냉키 FRB 의장을 비롯해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참석하는 중요 행사다. 1년 전 열렸던 잭슨홀 회의는 불과 몇 주 뒤 터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금융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미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라는 폭풍우를 뚫고 나온 데는 버냉키 의장의 공이 크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1월31일이 임기만료인 그를 연임시키지 않는다면 월가와 워싱턴 정가가 깜짝놀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NYT는 소개했다.

김미희 기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