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공포증 때문에 눈앞에 육교가 있는데도 20m 떨어진 횡단보도까지 가서 길을 건너는 친구를 비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 인생을 우회하고 있습니다. "

문학 계간지 <시에>의 올해 시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홍조 한국경제신문 편집위원(55 · 사진)은 늦은 등단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표 상상력 주식회사가 파는 잠재의식 해방을 위한 몇 개의 이미지> <어비계곡의 여름> 등 시 3편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중 <살바도르 달리표…>는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 작품.'이제/당신을 짓눌러온 거짓 신화와 전설을/무장 해제시키고/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초현실주의를 온몸으로 초대하라/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자기 본능/그 심층의 이미지를 날 것 그대로 인정하라.'

그가 시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문예반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밤새워 시집을 읽고 원고지와 씨름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우던 그는 대학 전공도 국문과를 택했고 문예창작과 후배들과 함께 습작에 몰두했다. 문학청년들이 다 그렇듯 그도 해마다 가을이면 신춘문예를 향한 열병을 앓았다.

"'누구는 30분 만에 쓴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워하기도 했죠.결국 먹고사는 데 바빠 문학의 길과 멀어지고 말았는데 늦게서야 이런 기쁨을 누리게 됐습니다. "

이번 당선작은 '탄탄한 구성과 시니컬한 어조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해가 바뀔 때마다 신춘에 됐다며 표정 관리하던 선 · 후배,그들의 시구를 몰래 외우고,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에 밑줄 긋고,기발한 상상력에 당구장 표시했던' 젊은 시절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억제할 수 없는 충만감,허기와 갈증 단숨에 날려버리는 환희'를 고백하면서도 '결코 내가 사냥한 포획물이 아님을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겠다'는 겸양까지 곁들였다.

그동안에도 시를 잊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재개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메모를 하고 몇달에 걸쳐 퇴고를 거듭하면서 '나이 들수록 더 깊어지는 언어의 뿌리'를 새롭게 발견했다.

"서정적인 취향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50대 중반에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보고 싶었는데,시가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지요. "

시의 매력을 '정갈한 함축성'으로 꼽은 그는 "앞으로 더 밀도있고 향기로운 시를 쓰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