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가는 예술가족이 많다. 그 중에서도 미술 분야가 더욱 그렇다. 감성적 가족 분위기가 시너지 효과가 되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 곁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름다운 스토리가 된다.

한국 현대미술 1세대로 엥포르멜(비구상) 운동을 주도했던 하인두씨(1930~1989년)의 20주기를 맞아 미술인이라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한 가족이 그를 추모하는 전시회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고 있다.

하씨의 아내인 한국화가 류민자씨(68)를 비롯해 아버지 뒤를 이어 서양화가의 길을 걷는 딸 태임(37),조각가 아들 태범(36),사위인 사진작가 강영길씨(39)가 그들이다.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미술 속에서 한 마음으로 맺어진 특별한 인연을 돌아본다는 취지에서 전시회 제목을 '오색 동행'으로 붙였다.

가족으로,같은 작가로 살아가면서 빚어낸 작품들이 어떤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지,어떤 다양함의 차이를 보이는지 탐색할 수 있는 자리다.

주인공 하인두의 작품은 한국적 추상미술을 만들어 냈던 1970년대 이후 대표작을 비롯해 1980년대 암 투병 와중에 혼신의 힘으로 완성한 '혼불' 시리즈까지 모두 20여작품이 출품됐다. 오방색과 단청,만다라 같은 전통 미술과 불교 소재를 이용한 작품들로 한국 추상미술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1987년 남편이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도 남편이 붓을 놓지 않도록 끝까지 내조한 아내 류씨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자연의 풍경을 화려한 색감으로 묘사한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2007부터 시도한 '생명의 노래' 시리즈에서 보이듯 그는 드러나는 자연의 형상 속에 담긴 생명력을 찾는 데 주안점을 둔다. 류씨는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고,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규칙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색감은 아버지를,화면의 조화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딸 태임씨 역시 오방색이 너울거리는 근작 20여점을 내놓았다. 작가는 "현란한 색상의 붓질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모든 대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며 "아버지가 우주 전체를 표현했다면 나는 전체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사위인 사진작가 강씨는 담양 대나무숲을 비롯해 남해,동해,제주 바다 등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한 작품 10여점을 들고 나왔다. 잊혀져 가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감각적으로 잡아낸 '대나무' 시리즈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단색조의 구상화를 보는 듯하다. 서울예대 사진과와 파리 e.f.e.t예술대를 졸업한 강씨는 "대나무는 자아 의식을 표현하는 좋은 소재"라며 "장인 어른의 근본적인 고독과 존재의 의문을 잡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아들 태범씨는 뉴스의 사진자료와 이미지들을 수집한 뒤 이를 작은 모형으로 재현한 조각과 사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7일까지.(02)736-102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