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 '골목진출' 꿈도 꾸지 말라고?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출점을 규제하는 사업조정 권한이 5일부터 중소기업청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감에 따라 홈플러스,롯데슈퍼,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골목상권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지역 상인들이 반발하는 SSM 출점에 대해 지자체들이 호의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 상인들이 대기업의 출점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중기청에 사전조사를 요청하는 '사전조사신청제도'까지 도입돼 SSM사업은 원천봉쇄될 것이란 분석이다.

◆'칼자루'는 지자체로

개정 고시안 시행으로 각 지자체들은 SSM과 관련해 '사실상 허가권'을 갖게 됐다. 지자체는 사업조정 신청 사안에 대해 '사전조정협의회'를 구성해 SSM의 출점 유예나 영업시간,점포 면적,취급품목 제한 등 핵심 쟁점에 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미 사업조정이 신청된 SSM 점포들도 모두 지자체로 이관된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서울 신길동 · 염창동)와 이마트 에브리데이(암사동 · 쌍문동) 각 2건씩 사업조정 신청이 4일 추가 접수돼 SSM 관련 신청 건수는 총 23건(대형마트 1건,서점 1건 제외)에 달한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자체들이 이미 조례로 대형 마트나 SSM 진출 건마다 제동을 거는 상황에서 사업조정 권한까지 갖게 되면 앞으로 대기업의 SSM 신규 출점은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A유통업체 한 임원은 "내년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목소리 높은 중소 상인들의 주장을 시 · 도지사가 외면할 수 있겠느냐"며 "지역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소비자)들의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지자체가 중소 상인들에게만 유리하게 사업조정을 끌어가진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소비자들은 SSM 출점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점이 보류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갈산점의 경우 인근 대동1차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인천 부평구청에 "개점 연기로 아파트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조속히 개점해 달라"며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사전조사 신청은 영업비밀 침해"

대형 유통업체들은 특히 '사전조사 신청제'가 앞으로 모든 출점을 막겠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B유통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SSM 진출 계획을 사전에 중소 상인들에게 알려 사업조정 신청을 장려하는 셈"이라며 "정부가 사업조정제를 무리하게 적용해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관치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출점 정보를 미리 공개하는 것은 영업비밀 침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C유통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의 중요한 전략인 출점계획을 타의에 의해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중소 상인뿐 아니라 경쟁 업체들까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공정경쟁을 저해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소 상인들은 '대환영'이다. 김경배 슈퍼마켓조합연합회장은 "그동안 SSM의 출점 자체를 사전에 알지 못하거나 뒤늦게 알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 제도를 활용하면 '몰라서 당하는' 지역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석우 중기청장은 "중소 상인들이 대기업 시장 진출 계획 사실을 인지해 신청서를 내면 (중기청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적용할 예정"이라며 "사전조사를 남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꽃집,제과점 등 다른 업종 확산은 제한

중기청은 개정 고시안에 지자체에 위임하는 사업조정 권한과 사전조사 신청 대상을 '슈퍼마켓'으로 한정했다. SSM 이외에 서점,주유소 등은 종전처럼 중기청에서 사업조정 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홍 청장은 "자체 판단으로는 사업조정제가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며 "사업조정은 대기업이 오너십을 가진 주체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꽃집,빵집 등은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중기청 관계자는 "다른 업종의 사업조정 신청도 일단 받겠지만 SSM과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며 "광주 수완지구 롯데마트처럼 슈퍼마켓 상인들이 업종 분류가 다른 대형 마트에 대해 사업조정을 신청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손성태/송태형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