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투자자금이 국내 증시로 몰려 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기업들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에 따라 이들 기업의 주식을 쓸어담고 있다.

증시에서는 미국 자금이 장기투자 성향인 롱텀펀드 위주라는 점에서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가 앞으로 이어질 것이란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 국적 외국인은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6114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 전체 순매수(2조1094억원)의 76.3%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 국적 외국인은 지난 4월 2년 만에 순매수로 돌아선 뒤 3개월 연속 순매수 행진을 지속, 2분기에만 2조524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동안 국내 주식을 적극적으로 샀던 유럽계 기관자금이 많은 룩셈부르크(1조5514억원)와 케이맨아일랜드(1조2218억원)보다 1조원 이상 많은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계 자금의 대부분은 국내 주식에 장기 투자하려는 양질의 자금"이라고 분석했다.

김경덕 메릴린치 전무는 "한국 주식을 1~3년 정도 보유할 목적으로 해외 글로벌펀드에서 자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글로벌펀드가 대부분 미국에 거점을 두고 있어 미국계 자금의 유입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계 자금이 들어오면서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도 1조8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하고 있다. 이로써 이들의 올 순매수 규모는 13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33조6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판 것을 비롯 2005년부터 4년간 '셀(sell) 코리아'를 지속했던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글로벌 경제의 위기국면이 지나가면 세계시장에서 한국 대표기업들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이 같은 외국인 매수세의 배경으로 꼽힌다.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사장은 "전 세계를 놓고 투자대상을 고르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IT(정보기술)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만한 유망기업을 찾기 어렵고,자동차에서도 글로벌 수요부진에도 점유율을 늘려가는 현대차를 제쳐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IT담당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한국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다"며 "노키아가 세계시장 점유율을 한국 기업들에 잠식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상황인 만큼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경덕 전무는 "외국인들 사이에선 현대차에 대해 역사상 지금만큼 경쟁력이 뛰어난 적이 없었다는 평가가 컨센서스(의견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외국인은 IT와 자동차 주식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 지난달엔 삼성전자를 7146억원 순매수해 가장 많이 사들였고 현대차도 3456억원어치 매입했다. 이달 들어선 IT '3인방'인 삼성전자 LG전자 LG디스플레이가 나란히 순매수 상위 1~3위에 올랐고 기아차가 5위를 차지했다.

이에 IT와 자동차의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날도 삼성전자가 장중 68만3000원까지 치솟아 52주 신고가를 새로 작성한 것을 비롯 LG디스플레이와 현대차도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날 장중에 시가총액이 100조1635억원에 달해 지난해 6월18일(103조6980억원) 이후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기도 했다.

외국인 매수세는 하반기 내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외국계 증권사 전문가들은 올 들어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사긴 했지만,지난 4년 동안 팔아치운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작다며 추가 매수세가 기대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전 세계 뮤추얼펀드를 대상으로 자금 유 · 출입을 조사하는 펀드리서치회사 이머징포트폴리오닷컴에 따르면 이달 15일까지 한 주 동안 한국 관련 4개 펀드인 이머징마켓펀드,아시아펀드(일본 제외),인터내셔널펀드,퍼시픽리전펀드 등에서 1억5000만달러가 순유출됐지만,펀드별 국가 비중을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에 투자하는 자금은 1600만달러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