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최소 31조원의 매출과 2조2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

지난 6일 증권시장 개장 전.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삼성전자의 짧은 공시가 전자공시 시스템에 올라왔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 하던 투자자들은 "역시 삼성"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전망치의 두 배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린 것에 대한 찬사였다. '삼성전자가 불황 탈출의 신호탄을 쏘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조직개편의 힘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한층 더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산업계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올해 1월 단행한 조직개편을 꼽고 있다. 시장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제품별로 나눠져 있던 총괄조직을 TV,휴대폰 등을 관할하는 완제품 부문과 반도체,LCD사업을 진행하는 부품 부문으로 통 · 폐합 한 것이 올해 초 조직개편의 골자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복 비용이 줄고 유사 사업의 공동 마케팅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도 발생했다"며 "임직원들에게 긴장감을 부여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누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기업으로 변신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경영키워드는 '시장을 선도하는 마케팅'이었다. 리더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 뛰어들어 신속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선두를 따라잡는 기존 삼성식 전략으로는 경기침체를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LED(발광다이오드) TV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지향하는 '마케팅 기업'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LED TV는 2004년 소니가 처음 만든 제품이다. 하지만 비싼 가격과 소비자들의 무관심으로 전시회에서만 명맥을 유지해 왔다.

삼성전자는 LED TV를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우선 LED를 광원(光源)으로 사용한 LCD(액정표시장치) TV라는 뜻의 'LED LCD TV' 명칭을 'LED TV'로 통일했다. 이어 TV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내용을 담은 마케팅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성전자=LED TV'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매출도 급증했다. 지난 3월 한국과 유럽을 시작으로 북미,중국,동남아,중동 ·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시장에 출시된 삼성전자 LED TV는 출시 100일 만에 판매량 50만대(유통망 공급 기준)를 돌파했다.

마케팅 컴퍼니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지난달 출시한 전략 휴대폰 '제트'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딜러 및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전 마케팅과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글로벌 제품 발표회를 통해 제품이 나오기 전 200만대의 선(先)주문을 따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삼성은 올 들어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의 합작법인인 삼성LED,삼성SDI의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와 삼성전자의 중소형 LCD 사업을 묶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을 만들었다. 사업 재배치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더 신경을 쓰겠다는 취지다. 삼성LED는 LED TV 사업의 기틀을 닦는 역할을 맡고 있다. LED TV 시장이 급격히 성장 중이라 생산능력 확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LCD의 뒤를 잇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AMOLED 사업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몫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략 휴대폰 '제트'와 같은 전략제품에 집중적으로 AMOLED를 탑재하고 있다.

기존 계열사들도 적극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삼성SDI는 아예 업종을 바꾸는 '트랜스포머'식 경영을 선보였다. 이 회사의 주력 사업은 지난해까지 브라운관과 PDP 패널이었다. 삼성SDI는 수요가 갈수록 줄어드는 두 제품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전기자동차 등의 핵심 에너지원인 리튬이온전지로 주력사업을 바꿨다.

삼성SDI 관계자는 "전지사업의 호조로 2분기에는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주력제품을 다변화한 덕에 경기침체의 피해에서 한발 비켜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