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畵音'…색다른 퓨전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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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한국화 새장르 개척 전래식씨, 박영덕화랑서 10일까지 작품전 열어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탄생된다고 생각합니다. 산고의 아픔같은 것이 없으면 감흥이 안 나오거든요. 끈기와 공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만큼 작품마다 땀방울과 함께 진솔한 이야기들이 배어 있어야 빛이 납니다. "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개인전(10일까지)을 갖는 전래식씨(66)는 "그동안 앞만 보고 걸어온 화업 40년은 화면에 수많은 땀방울을 삭이며 '아름다운 구도'의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현대적인 화풍의 산수화인 '조형산수'(일명 퓨전 한국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중견 화가. 광목에 동양화의 재료인 먹을 씨줄로,서양화의 아크릴을 날줄로 직조하듯 아름다운 산수를 현대적인 화풍으로 그려왔다.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는 1997년에는 교학사에서 발행된 중학교 3학년 미술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며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실경 산수화에서 오는 진부함과 안일함에서 벗어나 현대적 조형의 세계로 눈을 돌린 겁니다. 세상이 변하니 미감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전통 산수화를 '양복입은 한국 사람'처럼 바꿔보고 싶었던 것이죠.사실 유럽 미국 등에 나가보면 산수화는 중국 그림,채색화는 일본 그림이라는 말을 듣고는 서운하기도 했고요. "
그는 "지리산을 비롯해 설악산 속리산 북한산 등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며 동양과 서양,스토리와 꿈을 어떻게 아우를지를 고민했다"며 "화면 속 산은 인간 내면의 상념과 희망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형상"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의 작품에는 수많은 산이 등장하며 한국화와 서양화의 장점이 결합돼 있다. 광목 위에 먹과 아크릴을 이용해 산의 색깔을 다양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서양화의 면분할기법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국화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렬한 붓 터치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산의 형태에서 기운생동함과 한국화 특유의 여백의 미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경기도 일산 작업실에서 하루 12시간씩 그림 작업에 매달립니다. 그림은 화면에 얼마나 땀방울을 적시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 부단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희열을 느끼기 어렵거든요. 땀이 배이지 않은 그림은 나중에 보면 확 불살라 버리고 싶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화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직업인 만큼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순간은 행복합니다. "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자연의 숭고'.색감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서정적 정감을 화면에 담아낸 조형산수 소품부터 400호 대작까지 총 35점이 출품됐다.
전통 산수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파른 산세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풍경인 듯하지만 소나무 계곡 실개천 폭포 구름 등이 은은한 색면의 조형으로 조화를 이룬다. 색이 천에 스며들거나 먹이 번지는 효과가 더해져 잔잔한 미소를 자아낸다. (02)544-848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