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2006년 인수한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쓸어담으며 성장가도를 질주해온 금호아시아나가 전격 후퇴를 결정함에 따라 향후 국내 기업 인수 · 합병(M&A) 시장에도 적지않은 충격파가 밀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여년간 재계를 풍미해온 'M&A를 통한 성장전략'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뿐만 아니라 M&A를 기업 성장의 핵심축으로 삼았던 다른 기업들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후유증 때문에 무조건 M&A를 기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오히려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분석함으로써 더 나은 성장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더 이상 요술방망이 아니다

대우건설,하이마트,밥캣,한국까르푸,극동건설,프리즈미안….2005년부터 2008년까지 국내 M&A 시장이 폭발할 때 매물로 나왔던 주요 회사들의 명단이다. 두산 금호 유진기업 대한전선 이랜드 웅진 등이 인수 주체로 나섰다. 당시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M&A를 통해 기업의 성장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당연히 재계 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증권가는 주가 상승으로 화답했다. 당시 경합 끝에 M&A를 성사시키지 못한 한 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그룹 회장이 '남들 다하는 M&A를 왜 우리는 못하냐'고 야단을 칠까봐 회의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말 그대로 '딜 히트(Deal Heat:과열)'의 시대였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에는 유동성이 풍부해 기업들은 낮은 금리로 M&A용 실탄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그런 조건이 M&A시장의 과열을 몰고왔고 위험 요인보다는 성장 프리미엄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1조달러대에 머물던 세계 M&A 시장 규모는 2007년 4조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기업 성장의 욕구와 세계 M&A 시장 열풍의 맞바람이 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불과 2,3년이 지나지 않아 M&A로 성장한 기업들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내몰렸다. M&A 붐을 일으켰던 경제 호황 국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시중의 유동성은 급속히 말라버렸다.

리먼 사태 이후 재무 건전성이 악화한 은행들이 멀쩡한 기업들의 여신까지 무차별적으로 회수하고 나서자 빚을 낸 기업들은 더욱 옹색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모 기업 관계자는 "해당 기업들이 과다하게 차입을 하고 시너지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데 대해 1차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하지만 정부와 은행이 취했던 태도도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돈을 빌려주겠다며 물밑에서 M&A를 지원했던 기억은 내팽개친 채,이제 와서 상황이 바뀌었다며 기업의 목줄을 조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끝내 대우건설을 포기해야 했던 금호아시아나도 이런 섭섭함을 갖고 있다.


◆균형감 있는 M&A 전략 긴요

이처럼 국내 M&A계의 거물 기업들이 유탄을 맞음에 따라 M&A 전략은 상당기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M&A 전문가들은 "당시 M&A의 좋은 점만 부각됐다면 요즘은 나쁜 점만 부각되는 역편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새로운 기회를 찾는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M&A 업계에서는 회수 전략(exit plan)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인수를 위해 많은 돈을 차입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자기 자본으로 인수할 때도 투자금을 어떻게 회수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인수 단계부터 확립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실패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대부분 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현금 확보 전략이 미흡했다고 봐야 한다.

회수 전략과 관련,STX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STX는 성장기에 인수한 대동조선(STX조선해양),범양상선(STX팬오션)을 상장시켜 인수자금을 대부분 회수했고 현재 산단에너지(STX에너지)도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들이 경영의 불확실성,불연속성에 대비하는 전략을 촘촘하게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M&A 전략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들일수록 평소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