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된 현대인들에게 금융자산 관리는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은퇴 후 노후생활을 위해서도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 사태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끝이 어딘지 아직도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올해 초 자본시장법이 시행되자 국내 금융기업들은 앞다퉈 자사의 장점을 세련된 크리에이티브로 극대화시킨 광고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다른 광고에 비해 자사의 장점을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과대포장하거나 뛰어난 비주얼 아이디어를 내세우지 않고도 소비자의 공감을 얻은 광고 한 편이 있다. 바로 '미래에셋 자산운용'의 '뛰는 여자' 편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위로 그리고 감동까지=어스름한 텅 빈 도심의 새벽.2009,2010…2019.미래를 상징하는 숫자들을 차례로 지나치며 한 젊은 여성이 도심의 거리를 힘차게 달린다. 이윽고 도시와 바다가 맞닿는 부두에 다다른 순간 멈춰서 허리를 굽힌 채 거친 숨을 한번 몰아쉬는 그녀.이것으로 조깅을 그만 하나 생각하는 찰나,그녀는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미소를 짓고 다시 힘차게 뛰어나간다.

일관되게 '뛰는' 컨셉트는 몇 년 전 모 스포츠화 광고를 연상케 하는,예전 어느 CM에서 본 듯한 단순한 비주얼 구성이다. 배경음악 또한 경쾌한 템포 속에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는 곡을 썼다. 무게감 있는 멜로디는 한번 들으면 쉽게 잊지 못할 강렬함이 느껴진다.

인생을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생각 차이 때문에 종종 논쟁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서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목청 높여 말한다.

그렇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해결 방안은 자신의 목소리를 먼저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듣고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아이로니컬하게도 심각한 문제가 쉽게 풀리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위로하며 결국 감동까지 주게 된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요? 미래는 만들어가는 걸까요?'로 시작되는 카피에는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소비자들의 불안하고 복잡한 마음 상태를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이 읽힌다. 소비자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읽어내고 진솔하게 다가가는 힘이 느껴진다. 이 힘이 바로 꽁꽁 얼어 있는 소비자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약속=광고의 마술사로 유명한 데이비드 오길비는 저서 《어느 광고인의 고백》에서 "약속,커다란 약속이야말로 광고의 본질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광고를 시청할 때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굳은 의지나 약속으로 호소하면 심리적으로 그 광고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위로와 감동 뒤에 '저희가 할 일은 당신의 일 년 일 년을 모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객의 은퇴 뒤까지 준비하는 미래에셋의 정신이니까요'로 이어지는 카피는 구체적이고 믿음이 가는 '희망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겸손하면서도 자신 있게 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심리적인 안정과 함께 만족감을 준다.

◆브랜드네이밍과 카피의 절묘한 결합=한자로 우리나라 사람들 이름의 뜻풀이를 해보면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커주기를 바라는지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브랜드네이밍 속에도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소비자의 편익이고, 둘째는 기억의 용이함이며, 셋째는 해외 진출시 오해가 없도록 하려는 의도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기본 컨셉트와 속성을 명확히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뛰는 여자'편의 카피에는 '미래에셋'의 '미래'라는 단어가 세 차례 언급되고 '미래에셋의 정신이니까요'로 끝을 장식함으로서 브랜드네이밍이 자연스럽게 네 번 반복되는 절묘함을 보여준다.

이로써 비슷한 제품군의 광고를 보고도 본인이 원하는 브랜드가 기억나지 않는 '설단(舌端)현상'을 막고 비주얼과 배경음악만 얼핏 보고 들어도 어떤 브랜드인지,광고가 말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쉽게 연상시킬 수 있는 좋은 광고의 사례라 할 만하다.

송채훈(광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