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대규모 시설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불투명한 국내외 환경 탓이다. 정부는 재정을 쏟아부으면 그만이지만 기업들은 한번 투자를 잘못하면 수년간 위기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투자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 적정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금융위기가 언제 회복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기존 제품생산 확대를 위해 시설투자를 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것이라는 얘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위기 때는 항상 수요가 공급을 못따라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이런 상황에서 시설투자를 더 할 경우 이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기존 제품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황기에는 현금을 확보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년 10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증자와 주식 관련 사채발행을 통해 수조원의 자금을 조달했지만 투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지금 같은 악조건 속에서 다른 나라 기업들에 비하면 국내 대기업들은 투자를 크게 줄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에 투자를 하라고 닦달할 경우 투자버블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