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부자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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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부를 3백년, 14대재 부를 이어오고 있는 경주 최 부잣집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명실 공히 국민의 존경을 받는 가문의 비밀은 바로 가문의 교훈 덕분이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십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가훈을 찬찬히 살펴보면 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신념이 깔려있다. 자신은 절제하면서 골고루 타인에게 부가 돌아가도록 분배하는 정신이 그 핵심이다. 민심을 얻어야 진짜 부자이고 그 부가 오래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부자란 먹여살려야할 식구가 많아 떡 수레가 큰 사람을 뜻하는가보다.
이탈리아의 최부잣집에 해당하는 가문을 찾자면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을 들 수 있다. 귀족이 아닌 상인으로 출발한 메디치 가문은 민중의 지지와 상업으로 성공하여 피렌체 공화국 정계를 장악하고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우고 유럽을 장악하였으며, 세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을 배출한다. 결혼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왕실에 일원이 되어 외교까지 성공하며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부(國父)’의 칭호를 받았다. 이렇게 메디치가문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무려 400년 이상을 부와 권력, 종교까지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만약 메디치 가문이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단지 돈 많은 명문가 정도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나 메디치가 없이는 르네상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가들의 하나같은 중론이다. 15세기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체, 마키아벨리 등 문화예술 인재들을 적극 후원하여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키워서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성지로 만든다. 전 세계 인간해방의 지침이 되었고, 현재 이탈리아가 패션, 부, 종교, 문화의 세계적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기둥이 이때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의 이런 행적은 정상적인 귀족이 아닌 상인 계급 출신이었기에 공고한 종교와 귀족 체제를 흔들기 위한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돈으로 권력과 종교를 산 것이라고 폄하하는 학자도 있지만 메디치가의 행보는 자기 가문만 잘사는 길을 택했던 것이 아니다. 대개가 자신들의 가문을 위해 주변을 희생시키고 심지어 나라까지도 팔아넘기는 사람과 극명히 비교된다.
물론 크고 작은 가문의 영욕이 교차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메디치 가문의 행보마다 피렌체 국민, 이탈리아, 아나가서 유럽 전체가 함께 번영하는 길을 걸었다는데 그 의미가 깊다. 그렇게 메디치가의 떡수레는 암흑의 중세에 르세상스라는 한줄기 빛이 되어 온 유럽을 수백 년 동안 먹여 살렸다.
아마도 메디치가문이 여느 가문처럼 정치나 종교 가문 출신의 귀족이었다면 상대방을 꺾어 지배하려고 전쟁터에서 보냈을지 모른다. 메디치 가문의 영광은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아야하는 상인정신이 면면히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부와 권력은 상대방을 죽이는 힘이 강하지만 인간 하나 하나의 영혼을 북돋우는 문화예술로 승화되었을 때는 살리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정치, 계급, 명예 심지어 종교가 대립하는 유럽을 르네상스라는 문화예술로 통일시킨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요즘 같이 국경을 넘은 기업의 시대에, 특히나 존경받는 재벌이 드믄 우리 사회에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은 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훌륭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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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십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가훈을 찬찬히 살펴보면 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신념이 깔려있다. 자신은 절제하면서 골고루 타인에게 부가 돌아가도록 분배하는 정신이 그 핵심이다. 민심을 얻어야 진짜 부자이고 그 부가 오래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부자란 먹여살려야할 식구가 많아 떡 수레가 큰 사람을 뜻하는가보다.
이탈리아의 최부잣집에 해당하는 가문을 찾자면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을 들 수 있다. 귀족이 아닌 상인으로 출발한 메디치 가문은 민중의 지지와 상업으로 성공하여 피렌체 공화국 정계를 장악하고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우고 유럽을 장악하였으며, 세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을 배출한다. 결혼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의 왕실에 일원이 되어 외교까지 성공하며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부(國父)’의 칭호를 받았다. 이렇게 메디치가문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무려 400년 이상을 부와 권력, 종교까지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만약 메디치 가문이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단지 돈 많은 명문가 정도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나 메디치가 없이는 르네상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가들의 하나같은 중론이다. 15세기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체, 마키아벨리 등 문화예술 인재들을 적극 후원하여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키워서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성지로 만든다. 전 세계 인간해방의 지침이 되었고, 현재 이탈리아가 패션, 부, 종교, 문화의 세계적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기둥이 이때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의 이런 행적은 정상적인 귀족이 아닌 상인 계급 출신이었기에 공고한 종교와 귀족 체제를 흔들기 위한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돈으로 권력과 종교를 산 것이라고 폄하하는 학자도 있지만 메디치가의 행보는 자기 가문만 잘사는 길을 택했던 것이 아니다. 대개가 자신들의 가문을 위해 주변을 희생시키고 심지어 나라까지도 팔아넘기는 사람과 극명히 비교된다.
물론 크고 작은 가문의 영욕이 교차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메디치 가문의 행보마다 피렌체 국민, 이탈리아, 아나가서 유럽 전체가 함께 번영하는 길을 걸었다는데 그 의미가 깊다. 그렇게 메디치가의 떡수레는 암흑의 중세에 르세상스라는 한줄기 빛이 되어 온 유럽을 수백 년 동안 먹여 살렸다.
아마도 메디치가문이 여느 가문처럼 정치나 종교 가문 출신의 귀족이었다면 상대방을 꺾어 지배하려고 전쟁터에서 보냈을지 모른다. 메디치 가문의 영광은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아야하는 상인정신이 면면히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부와 권력은 상대방을 죽이는 힘이 강하지만 인간 하나 하나의 영혼을 북돋우는 문화예술로 승화되었을 때는 살리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정치, 계급, 명예 심지어 종교가 대립하는 유럽을 르네상스라는 문화예술로 통일시킨 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요즘 같이 국경을 넘은 기업의 시대에, 특히나 존경받는 재벌이 드믄 우리 사회에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은 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훌륭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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