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각광받던 극사실주의나 예쁜 꽃 그림이 퇴조하고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스토리텔링 화풍'(일명 스토리아트)이 뜨고 있다.

'스토리 아트'는 추억,사랑,골프,밥상,판타지,신화,가족 등을 통해 현대인의 낭만과 서정성을 평면에 표현하는 작업이다. 김원숙(사랑과 추억) 이왈종(골프) 김병종(여행) 황주리(추억) 이수동 · 임태규(사랑) 전준엽(풍류) 전명자 · 김덕기(가족) 신선미(여성) 성태진씨(삼국지) 등이 대표적인 스토리아트 작가들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스토리 아트'가 유난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특정 미술 장르에 치중하거나 기법이 난해한 현매미술의 틀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이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다.

중견 작가 황주리씨(53)는 한때 원고지 형태의 사각 틀을 기본 화면구도로 사용할 정도로 옛 추억과 삶의 다양한 이야기에 집착해 왔다. 출판사를 경영하던 아버지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007년부터 일상 풍경을 옴니버스식으로 묘사한 '식물학'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그의 '식물학' 시리즈는 식물의 줄기와 꽃,잎사귀 이미지에 갖가지 기억들과 유머,낯선 상상력을 이야기 형태로 꾸민 작품.불황에도 불구하고 황씨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지난달 노화랑의 기획전 '작은 그림 큰마음'전에서 출품작품 15점이 전시 개막 전에 매진되기도 했다. 내년 5월 갤러리현대의 개인전에는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온 이방인처럼 따끈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예정이다.

오는 8월 중순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갖는 재미작가 김원숙씨(57) 역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화면에 다채롭게 꾸미는 대표적인 작가. 자신의 '사랑과 추억'을 주제로 일기를 쓰거나 독백하듯 희망 · 빛 · 염원 ·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화면으로 조곤조곤 들려준다.

작은 삽화나 만화 같은 그림을 주로 그리는 '낭만주의 화가' 이수동씨(50)는 꽃 구름 하늘 나무 의자 여인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한편의 연극처럼 화면에 배치시킨다. 단순한 구도에 서정성이 넘쳐서인지 때론 동화책에 나오는 삽화같기도 하고 부드러운 발라드 음악같기도 하다. 이씨는 지난 4월 서울 안국동 송아당갤러리 개인전에서 출품작 30여점이 팔려 불황에도 인기를 과시했다.

또 황석영씨의 소설 《바리데기》 표지 그림을 그린 30대 작가 신선미씨는 한복 입은 여성을 통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동화적 감성을 액자소설식으로 작업해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풍경을 이야기로 풀어낸 '화폭의 시인' 김병종씨,삼국지의 이야기를 만화형태로 작업한 성태진씨,제주 생활을 골프로 아기자기하게 풀어내는 이왈종씨 등의 작품도 사실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갖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그림을 구상 중인 대다수 화가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이야기'다. 얼마나 관람객에게 쉽게 이해되고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얘깃거리를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지만,순수 창작으로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스토리텔링 아트가 재미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화법이나 화단의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면 화가들도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