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샤넬이 차지하고 있던 명당자리를 꿰차고 들어간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단일 브랜드로 1년에 5000억원 이상 팔리는 빅 히트작이다. 그렇다면 해외 시장에서 설화수와 아모레퍼시픽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될까.

홍콩의 '명품 백화점' 하비니콜스 1층엔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인기 높은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만 모여 있다. 샤넬 · 디올 · 겔랑 · 에스티로더와 함께 설화수 매장이 어깨를 겨루고 있다.

최고가 브랜드들인 '드 라메르'나 '라프레리'와 같은 급으로,올 들어 4월까지 전년 대비 80% 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 백화점 매장 중 화장품 매출이 가장 높은 일본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이곳의 39개 글로벌 화장품 중에도 아모레퍼시픽의 프리스티지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전년 대비 103% 성장률을 올렸고,지난 3월에는 매출액으로 세계 최대 백화점인 도쿄 니혼바시 미쓰코시 본점에도 입점했다.

지난 15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46 · 사진)은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글로벌 사업 전략에 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해외 진출 스토리를 소개했다. 서 사장이 털어놓은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시장 개척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와 수모를 겪은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은 1991년 고(故) 서성환 회장 시절 '순정'이란 제품으로 프랑스 시장에 진출했지만 불과 3년 만인 1994년 철수했다. 당시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고 있던 그는 "그 당시로는 결코 적지 않은 50억원을 프랑스 시장에서 털어 먹었다"며 "현지 약국 채널에서 유통되고 있던 제품을 직접 수거하러 다녔는데 우리 제품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보자 눈물이 울컥 나왔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이를 통해 현지 시장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 뒤 1997년 '롤리타 렘피카'향수로 다시 프랑스 시장을 공략했을 땐 출시 8개월 만에 프랑스 향수시장 1%를 차지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시장 진입도 녹록지 않았다. 그는 "2006년 이세탄에 '아모레퍼시픽' 매장을 열고 1년 동안 장사가 안 돼 마음 고생이 무척 심했다"며 "매출이 안 나오다 보니 화장품 담당 과장에게 심한 소리를 듣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 사장은 일본 직원들을 데리고 한국식 폭탄주를 함께 마시며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이에 고무된 현지 매장 직원이 일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여장 남자 '잇코'에게 6개월간 '아모레퍼시픽'을 사용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고,이후 TV 프로그램에서 아모레퍼시픽으로 가득한 잇코의 화장대가 소개되면서 대박이 터졌다. TV 방영 다음날 단 하루 동안 4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5월 이세탄백화점이 선정하는 올해의 그랑프리상도 탔다.

서 사장은 어떤 글로벌 업체를 라이벌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라이벌은 없다"며 "제품을 사주느냐 아니냐로 고객과 경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전할 때 80%는 앞(고객)을 보고,15%는 옆(경쟁사)을,5%는 뒤(과거)를 본다는 경영 신념을 피력했다. 그는 "올해는 16개국에 진출해 있는 해외시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는 의미있는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매출 5조원을 올려 세계 10대 화장품 메이커 대열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현재 전체 매출의 11%를 차지하고 있는 해외 매출 비중도 이때까지 24%로 2배 이상 끌어올릴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 공략의 일환으로 다음 달 홍콩 캔튼 로드엔 35억원을 들인 최고급 스파시설을 갖춘 4층짜리 설화수 플래그십 매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내년 상반기에 '설화수'를 미국 고급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에,하반기엔 중국 백화점에 입점시킬 방침이다.

홍콩=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