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여승무원은 멋있고 화려하다. '얼짱'급 미모에 유창한 외국어 실력,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 어떤 요구를 해도 척척 해결해주는 일솜씨,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에 몸에 밴 친절까지.게다가 해외 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직업적 특성은 일반인들에게 화려한 판타지마저 심어줄 만하다. 때문에 국내 항공사 승무원 공채는 100 대 1을 넘을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아시아나항공의 사내 친절왕으로 손꼽히는 여승무원 배재원씨(30)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만나 멋있고 화려해 보이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배씨는 입사 후 7년간 승객들이 147건의 친절사례를 올려준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단 한건의 고객 불만도 제기하지 않아 우수사원 포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친절왕에 오른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회사 내에서 승무원들끼리 운영하는 매직팀,챔버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매직팀은 마술을,챔버팀은 음악공연을 하는 팀입니다. 제가 바이올린을 전공했기 때문에 입사 후 자연스럽게 챔버팀에 들어갔어요. 생일을 맞은 승객들께 음악선물을 하고 마술쇼를 보여드렸는데 그래서 많은 손님들이 제 이름을 기억해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 입사했을 때 한 선배가 들려준 조언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너는 매일 하는 비행이겠지만 손님들은 대부분 손꼽아 기다리다 해외에 나가는 분들이니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하라는 것이죠.그래서 한 분 한 분이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


▶승무원이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외국에 자주 나갈 수 있는 승무원을 동경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바이올린을 배워서 예술고에 간 뒤 음대(대구 계명대)로 진학했거든요. 그런데 대학 3학년 때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기내와 해외에서 음악공연을 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바이올리니스트의 길과 어렸을 적 꿈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었죠.그때부터 틈틈이 음악 활동과 승무원 시험 준비를 병행해 2002년 입사시험에 합격했지요. "

▶승무원으로서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요.

"전 세계를 쉽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인 것 같아요. 승무원들은 현지 도착 후 안전한 장소에 묵으면서 호텔의 여러 서비스를 보다 싼 가격에 제공받거든요. 또 승무원들끼리 돌려보는 도시별 맛집 리스트가 있어요. 세계 각 도시의 가볼 만한 식당 리스트인데 정말 알차고 방대한 정보죠.그리고 해당국에서 1~2일 머무르다 돌아오기 때문에 체력만 허락한다면 인근 도시 여행도 가능하고요. 개인시간이 많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한 달에 9~10일 정도 공식적으로 쉬는 날을 보장하는 데다 체류국에서도 하루,이틀가량 휴식시간이 있어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회사 일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죠."

▶영화에서 보면 승무원과 승객 사이에 로맨틱한 일도 있던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선배 승무원들 중에는 승객과 결혼한 분도 있지만 회사 규정상 승객을 외부에서 만나는 것은 금지돼 있어요. 가끔 명함을 주고 가거나 명찰을 보고 이름을 기억했다가 제 홈페이지에 메시지나 쪽지를 남기는 분들도 계시지만 따로 연락을 드려본 적은 없습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겠어요.

"동남아 노선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주말에는 만석인 경우가 많은데 가끔 신혼부부의 좌석이 따로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조치를 해드리는데 정말 조정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자 신부가 신랑과 떨어져 신혼여행을 가게 됐다며 계속 우시는 거예요. 신랑은 신부를 달래기 위해 좌석 팔걸이에 걸터앉아 비행기가 이륙을 해야 하는데도 일어나지 않고….그분들 설득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신혼부부를 떨어져 앉게 해야 하는 제 마음도 안 좋았고요. 그래서 비행 내내 메뉴 선택부터 음료 서비스까지 특별대우를 해드렸더니 내릴 땐 그분들 기분이 좋아져서 보람을 느꼈어요. "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승무원들이 서비스하는 모습만 보면 굉장히 우아하고 여유로울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시죠.하지만 보여지는 서비스는 정말 일부예요. 승객들이 볼 수 없는 겔리(기내 주방)에서 저희는 전쟁이라도 난 듯 바쁘게 일합니다. 쉬지 않고 식사준비를 해야 하고 기내 면세품 판매 준비,다음 비행을 하는 승무원들을 위한 교체팀 준비에다 장거리 비행의 경우 두 번째 식사도 준비해야 하니까요. 틈틈이 화장실도 청소해야 하고,수십㎏짜리 카트도 혼자 끌어야 합니다. 1인 다역을 해야 하니 힘들죠.그래서 승무원들끼리는 '3D 업종'이라고 푸념도 자주 하죠."

▶미주나 유럽 노선을 탈 때는 시차가 큰데 어떻게 적응하나요.

"처음에는 시차 적응이 가장 힘들어요. 그런데 7년 정도 일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어요. 시차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토막잠을 효과적으로 자면 좋아요. 길게 한 번에 자는 게 아니라 잠깐 잠깐 잠을 자다 보면 어렵지 않게 해당국의 시간에 적응할 수 있죠.그리고 체력도 중요해요. 그래서 승무원들은 헬스,요가 등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또 홍삼 같은 건강보조식품도 많이 먹는 편이에요. "

▶시차 외에도 힘든 게 있나요.

"한 달에 몇 번씩 돌아가는 스탠바이 스케줄이 좀 힘들죠.일정이 미리 나오는 게 아니라 대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결원이 생기는 곳에 투입되는 '5분 대기조'이거든요. 언제,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힘들죠.한번은 12월29일에 스탠바이를 하는데 인도 델리 4박5일 스케줄이 나왔어요. 새해를 한국에서 가족과 보내려던 꿈이 날아가 버렸죠."

일하다 보면 억지를 쓰는 승객도 있을 텐데요. 어떻게 대처하나요.

"기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규정대로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손님들에게는 첫째도 공손,둘째도 공손,셋째도 공손이 철칙이죠.만취한 승객이나 기내에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해 달라며 무조건 큰소리 치는 승객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술을 석 잔 이상 제공할 수 없다는 규정을 미리 알고 승무원들에게 돌아가면서 한두 잔씩 술을 달라고 하는 승객도 계시죠.하지만 술을 어느 정도 제공했는지 승무원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기 때문에 도합 석 잔이 넘어가면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

▶외국에는 이른바 '아줌마' 승무원들도 많은데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왜 젊은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나요.

"결혼해서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승무원은 적게는 2~3일,많게는 일주일이나 집을 비우기 때문에 더더욱 아이들 문제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에는 사내 복지가 좋아져 기혼 승무원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요. 승무원 중에 기혼자가 40%를 넘거든요. 세 아이의 엄마인 선배도 있어요. 결혼 후에도 계속 승무원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

글=박민제/사진=강은구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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